모노크롬, 팝아트,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모던아트’에 밀려 미술애호가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서화·자기 등의 우리 ‘고미술’이 다시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뉴욕크리스티는 오는 25일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여는 ‘한국과 일본 고미술품 경매’를 통해 추정가 총액만 323만 달러(약 36억 원)에 이르는 한국 고미술품 53점을 경매에 올린다. 출품작 중에는 16세기 조선 중종 때 숙정옹주의 남편 구한(具澣)의 시가 적힌 ‘소상팔경도’ 8첩(추정가 80만∼120만 달러)과 18세기 조선의 ‘청화백자추초문호’(추정가 70만∼80만 달러) 등도 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흘러나간 문화재급 작품들로서 이번 경매를 통한 국내 환수도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에서의 경매가 우리 고미술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라면 국내에서는 고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도 잇달아 열린다. 호림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고려시대 철화청자를 중심으로 유물 214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를 열고 있다. 이 박물관이 21년 만에 여는 철화청자 특별전으로, 유물 중 절반 이상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철화청자는 고려청자의 한 종류로 왕실과 귀족보다는 백성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된 그릇이다. 일반적으로 고려청자 제작에 쓰이는 상감기법은 무늬를 파낸 뒤 하얀 흙과 검은 흙을 채워 넣지만, 철화기법은 붓에 철분이 많이 함유된 철사안료(鐵砂顔料)를 묻혀 빠르게 표현했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시원한 풍류가 특징이다. 매병, 대접, 잔, 유병, 주자 등의 다양한 형태 및 다채로운 무늬의 철화청자를 만날 수 있다.
이장훈 학예연구관은 “철화청자를 통해 고려청자가 지닌 미적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더하고 인식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9월 30일까지 계속된다. 전시 문의는 02-541-3523
조선시대 전기부터 말기까지 예술계를 풍미했던 서화가들의 훌륭한 그림과 글씨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리고 있다. 공아트스페이스는 오는 10일까지 고미술 특별기획 ‘택선고집(擇善固執)’ 전을 종로구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연다.
택선고집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구절로, ‘훌륭한 것만 가려내어 굳게 붙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과 겸재 정선·현재 심사정·관아재 조영석 등 삼원삼재(三園三齋)의 작품과 호생관 최북, 추사 김정희 등 조선시대 화단에서 이름을 떨쳤던 문인화가와 궁중 화원화가들의 작품 60여 점이 선보인다.
고미술 전시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마련된 전시여서 미술애호가는 물론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전시된 작품 중 공재 윤두서의 ‘마상인물도’(종이에 수묵채색, 78.5×54.5㎝), 추사 김정희의 ‘각심한루’(종이에 수묵, 32.5×105.5㎝) 등 20여 점은 ‘한국회화대관’이나 ‘경매된 서화-일제시대 경매도록’에만 수록된 채 해외에 흩어져 있던 문화재로 개인 애호가들이 매입해 국내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문의 02-735-9938
고미술에 대한 이 같은 재조명 움직임에 대해 미술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서구 모던아트에 함입된 우리 화단을 위해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평론가 최열은 “고미술은 예측불허인 경제 상황에서 안전자산처로 분류될 뿐 아니라 지난 20여년간 극사실에서 이어진 단색화 열풍이 주춤하며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이 다변화된 때문에 나타난 현상 같다”며 “이유야 어떻든 우리 문화 예술의 뿌리인 고미술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바탕에 깔려야 문화적인 뒷심도 생기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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