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호가 한시티에 도착한 지 이틀째가 되는 날 아침, 어김없이 7시에 눈을 뜬 이응호는 잠깐 이곳이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동에 있는 아파트인 줄 알았다. 침대 왼쪽의 옷장으로 다가가려다가 빈 벽을 보고는 깨달은 것이다. 이곳은 한랜드다. 새로운 땅, 한 달 전에 온 아들 이재석은 한시티 동쪽 구역에다 전자제품 매장을 개업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열흘쯤 후면 300평짜리 매장이 개장될 것이다. 거실로 나갔더니 일찍 일어난 이재석이 라면을 끓이다가 머리만 돌려 인사를 했다.

“아버지, 오늘 날씨가 춥다네요. 이따 오실 때 옷 단단히 입고 오세요.”

“인제 추위는 이골이 났다.”

화장실로 다가가면서 이응호가 씩씩하게 말했다. 72세가 되었지만 아직 건강한 이응호는 전주 살 때는 매일 아침 산에 다녔다. 이곳은 한시티 외곽의 아파트다. 한랜드에는 40피트 컨테이너 규격의 통나무집이 유행하고 있는데 수천 개가 쌓인 것을 보면 장관이다. 이응호 부자도 가족이 오기 전에 임시로 통나무 집 한 채를 세내어 둘이 거주하고 있다. 씻고 나왔을 때 식탁에 라면 그릇을 놓으면서 이재석이 말했다.

“아버지, 물건은 내일부터 도착하니까 진열만 하면 되겠어요.”

“응, 한랜드 행정이 빠르더라.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식탁에 앉으면서 이응호가 말했다. 매장의 직원은 전주 매장에서 근무하던 관리자가 따라온 데다 중국계 직원 셋, 러시아계 한 명을 채용했다. 전주에서 매장 정리한 자금으로 한랜드에서는 2배 규모의 가게를 차렸어도 남았다.

“아버지, 다음 달에 영준이를 데려와야겠어요. 여기 학교가 두 달 후에 개학을 하거든요.”

“그래야지.”

전주에 남은 이재석의 가족을 말한다. 손자 영준이 열 살로 초등학교 3학년, 미영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이곳 한랜드는 방학이 길어서 두 달 후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재석은 이미 한시티 주택가에 100평형대 아파트를 구입해 놓았다. 라면을 먹으면서 이응호가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말했다.

“난 당분간 여기서 지내련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난 그냥 여기서 살 거다. 전주에서처럼 혼자 살겠다는 말이야.”

“아버지.”

“배달 일은 좀 그렇고 시내에 지점 하나를 운영해야겠다. 내가 자금을 낼 테니까 넌 돈 쓰지 않아도 돼.”

“아, 그거야 제가 내드리는 것이지만요. 아버지.”

“난 혼자 사는 것이 편해.”

5년 전에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낸 이응호는 혼자 살고 있었다. 전주에서도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이응호의 성격을 아는 터라 잠자코 라면을 먹던 이재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친구분들 안 오세요?”

“누구 말이냐?”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요.”

“몇 명은 놀러 오겠지.”

국물을 한 모금 삼켰다. 이응호가 이재석을 보았다.

“너, 여자 말했던 거냐?”

“혼자 지내시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서요. 성숙이랑 윤석이도 아버지가…….”

“내가 알아서 하마.”

이응호가 말을 잘랐다. 성숙이와 윤석은 재석의 동생들이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이응호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나이 들면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져야 돼. 그래야 갈 때 불안해지지 않는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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