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연세대’ 첫 세대 57학번이 말하는 ‘사회 통합’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하나로 합쳐 연세대학교로 탄생한 지 올해 60돌을 맞았다. 연세대는 1957년 통합 이후 국내 최고 수준의 사립대로 입지를 굳혀 왔다. 세계적으로 학문부터 산업까지 통합 또는 융합이 대세인 시대, 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각 분야에서 분열과 갈등이 극에 달한 현 시점에 연세대는 통합의 성공 사례로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에 문화일보는 ‘통합 연세대’의 출범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1957학번 원로들을 만나 통합의 의미를 들어봤다. 3월 27일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진행된 대담에는 과학기술부총리를 지낸 김우식 전 연세대 총장과 박기일 의대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두 분이 통합 연세대로 입학한 첫 세대인데, 60주년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김우식 전 총장(이하 김) = 저는 사실 통합되는 걸 모르고 들어왔습니다.
△박기일 명예교수(이하 박) = 저는 당시 의대 학장이셨던 조동수 선생님이 아버님 친구여서, 그분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우리는 입학해서 의예과 2년을 이쪽 신촌 캠퍼스에서 다니고, 본과에 올라가서는 서울역 앞에 있던 세브란스의대에서 공부했어요.
△김 = 올해가 연세대 132주년이라고 하는데, 그건 1885년 설립된 한국 최초 서양식 병원 광혜원 역사이고, 연희전문학교 역사는 100년이죠. 1917년 4월 7일에 설립인가를 받았거든요. 연희전문이 여기 신촌 캠퍼스에서 시작한 거고, 서울역 앞에 세브란스가 있었죠.
―연세대는 통합의 효과를 본 성공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박 = 당시 백낙준 선생님(초대 총장), 김명선 선생님(초대 부총장) 이 두 분이 의기투합해서 합쳤는데, 그 양반들이 선견지명이 있으셨어요. 그때 합치지 않고 따로 갔으면 아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합쳐서 시너지가 생긴 거죠. 지금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잖아요. 바이오산업을 하려면 임상과 기초가 합쳐서 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세브란스만 따로 있었어도, 반대로 의료원 없는 연희전문만 있었어도 지금 이런 분야를 선도하는 학교가 될 수 없었겠죠.
△김 = 융합·통합·통섭, 그로부터의 경쟁력 도출. 이게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돼요. 지금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이 240개 정도 될 텐데,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합쳐진 시너지 효과가 모델 케이스가 된다고 봅니다.
―연세대의 성공적 통합이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립과 분열이 가장 첨예해질 수밖에 없는 대통령선거 국면이고, 게다가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사회가 심하게 쪼개졌습니다.
△김 = 진리와 자유라는 연세 정신을 모토로 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하면 사회 통합은 자동으로 될 것 같습니다. 또 소위 기독교 정신이 사랑이거든요. 연세대 선배들을 보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의대 이태준 선생, 윤동주 시인 등 상징적인 분이 많아요.
△박 = 흥남 철수작전 때 현봉학 선생은 의사죠. 그분이 미군을 설득해서 피란민 몇 만 명을 거제도로 옮기고 했는데 이런 분들의 희생정신이 우리 사회에 접목이 될 수 있다면 싸움질 안 하고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연세 정신, 기독교 정신을 사회 통합 차원에서 집어넣으면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촛불이다, 태극기다 이런 것 없어도 잘될 텐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며 특히 세대 갈등이 증폭된 느낌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갈등을 더 주요한 변수로 꼽는 분석도 있고요. 세대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박 = 대화로 풀어야죠. 아버지라고 해서 자식한테 무조건 ‘네가 뭘 안다고’ 이러면 안 됩니다. 서로 대화를 해서 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풀 수 있어요. 대화가 단절돼 있어서 문제지, 대화하는데 안 풀리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소위 ‘꼰대’나 ‘태극기파’가 돼서 그런지 몰라도 나쁜 기운이 스며드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종북, 좌파 이런 것들요. 그런데 6·25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그때의 일이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자꾸 대화를 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한테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너도 이렇게 생각해 봐라’ 이런 식으로 대화로 풀어가야죠. 젊은 친구들 생각이 옳은 것도 있잖아요.
△김 = 이번에 촛불·태극기 대립 때문에 아버지하고 아들이 싸웠다는 게 신문에 많이 나던데요. 소통 방법은 다 나와 있어요. 역지사지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서로 이해를 안 하려고 합니다. 계층 간 신뢰나 군신 간 신뢰가 중요한데 우선 대통령부터 신뢰가 땅에 떨어져 버렸으니 지금은 나라의 어른, 표상이 되는 사람, 중심이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박 = 공권력이 망가진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나라의 질서가 파괴되는 거예요. 이런 것부터 하나하나 개선을 해나가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김 = 세대 간 문화 차이를 좁혀가는 이벤트를 국가 또는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으켜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로 이해해줘야지, 무시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박 = 교육이 참 중요합니다. 인성교육을 대학교 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런 교수님들이 계셨는데 요새는 교수들이 학문만 전달해주고 끝나니까 인성교육이 안 되는 겁니다.
―두 분 모두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강조하셨는데, 인생의 선배로서 ‘N포세대’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박 = 저는 외과 의사니까, ‘최선을 다했는데 환자가 죽었다면 그것은 환자 잘못’이라고 제자들한테 이야기합니다. 물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전제 아래서 그렇다는 겁니다. 조금의 후회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취지입니다. 젊은 사람들 요새 살기 힘들고, 사회적으로도 진보다 보수다 싸우기만 하고 혼란스러운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경쟁해서 이겨야 합니다. 자꾸 남의 것 건드리지 말고요. 정치는 정치인한테 맡기고, 산업은 기업가에게 맡기고, 장사는 장사하는 사람에게 맡겨야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각 분야에서 성공하고 승자가 된다면, 그걸 다 합치면 나라가 승리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죠.
△김 = 제가 주례사 할 때 자주 써먹는 말인데, 첫째는 성숙한 나를 만들기 위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고, 인격을 갖추는 것도 모두 자기 관리에 포함됩니다. 둘째는 나누고 베풀고 돕는 삶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 취직 잘 안 되고 힘든 것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결국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봉사도 하고 공헌도 하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두 분은 공학과 의학 분야에서 누구 못잖은 전문가들이신데, 각자의 분야가 더욱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정책적 제언이 있다면.
△김 = 국가발전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라고 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경쟁력을 일으켜서, 그것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죠. 경쟁력은 차별성을 만드는 것이고, 차별성은 곧 창의성과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도 차별성을 이야기한 겁니다. 2006년 2월에 제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되고 몇 개월 후에 일본에 건너갔어요. 이화학 연구소라는 세계적인 연구소가 있는데, 노벨화학상을 받은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이사장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연구소를 키운 비결을 말해 달랬더니, “여러 연구소가 1등, 2등 등수 갖고 상당히 애를 쓰는데 우리 연구소는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의 콘셉트로 연구소를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일본이 경제가 나빠졌다 해도 꾸준히 기틀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그런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게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복지는 없었어요. 대덕연구단지에 2만여 명이 근무하는데, 열심히 스카우트해서 데려다 놓으면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이 자꾸 학교나 개인 기업으로 옮기더라고요. 왜 그러나 봤더니 정년이 짧고, 연금제도가 없어서예요. 제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한테 떼를 썼어요. 예산이 이미 책정되고 국회에서 조율할 단계였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대통령을 만나 3000억 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대덕연구단지에 연금이 없습니다. 대통령님이 대덕에 와서 연설했던 것을 읽어보니 연구원 복지 향상과 생활 안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셨는데, 지금껏 뭐하셨나요”라고 그랬습니다. 기획예산처장한테 연락하니까 어림도 없다길래 “북한이 공격해 들어왔다고 하면 예비비 동원해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것처럼 위급한 상황에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달라”고 했어요. 결국 2000억 원으로 타협해서 끝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만든 연금공제조합이 지금 그게 몇조 원 규모가 됐습니다. 과학기술로 후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기부가 바뀝니다. 걸핏하면 과기부를 없애버리죠. 박근혜정부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됐는데, 해놓은 게 뭐가 있습니까. 오는 5월 9일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지 모르지만, 새로 대통령 되는 사람은 또 뭘 어떻게 할 겁니까. 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정부 출범인데. 지금 4차 산업혁명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과학 구조는 굉장히 취약해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묶여 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로켓 개발할 때 거리가 제한돼 있어요. 핵 개발? 옴짝달싹 못 하게 돼 있어요. 이런 형편에 대선 주자들은 쓸데없는 공약만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지금 각 대선 캠프에다가 이렇게 해야만 과기부를 살린다고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 우리나라 의료에도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의사 됐을 때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를 4개 메이저라고 했어요. 공부 잘하고 실력 좋은 사람들이 내·외·산·소 전문의가 됐죠. 그런데 시대가 가면서 바뀌었습니다. 옛날 박정희정부 시절에 북한하고 얘기하면 항상 의료가 문제가 됐어요. 북한에서는 아프면 돌팔이한테 가든 어떻든 진찰을 받을 수는 있었는데, 우리는 아파도 병원에 못 갔어요. 북한에서 “너희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아픈 사람 치료도 안 해주는 게 나라냐” 이러면 우리가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이러니까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험시범사업을 시작했어요. 그게 1978년이에요. 부분 의료보험을 도입했는데, 맹장염·위염 이런 병명을 쭉 적고 수가는 우리나라에 맞게 후려쳐서 적었어요. 예를 들어 일본 맹장염 수가가 100원이면 우리는 5원 식으로 적어놓은 겁니다. 나중에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되면서 수가를 조정해야 하는데 옛날에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그냥 가져갔습니다. 수가를 현실화하려면 기존 수가의 10배, 20배로 올려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그때부터 외과 수가가 저 밑으로 떨어져서 형편없어지니까 젊은이들이 외과 지원을 안 해요. 누가 미쳤다고 그걸 하겠습니까. 10년, 20년 후로 갈수록 외과 의사가 확 줄어들 겁니다. 그러면 피해는 국민이 받는 거예요. 돈 많고 백 좋은 사람들은 외국 나가서 수술받겠지만, 일반 국민은 어디로 가냐는 거죠. 의료보험 수가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보건복지부 장관을 소신 있는 사람 하나 뽑아서 대통령이 ‘미션’을 주는 거죠. 소신껏 의료 수가를 개혁하고, 책임지고 그만두라고. 요즘 피부과 의사가 피부병 보는 사람 있어요? 맨날 점 빼고 주름살 펴고 주사 놓고. 이건 피부과가 아니에요. 의료 수가부터 뿌리째 바꾸지 않으면, 변칙 의료를 정부에서 조장하는 꼴일 뿐입니다. 포괄수가제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맹장염으로 입원했다면, 수술에서 퇴원까지 보험에서 100만 원을 주겠다고 하는 게 포괄수가제입니다. 수술을 어떻게 하든 무슨 약을 쓰든 100만 원입니다. 이거 미국에서 실패한 정책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빨리 수술하고 빨리 퇴원시켜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틀이면 집에 가라고 퇴원시킨단 말입니다. 또 하나 더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노인은 모든 생리적인 구조, 병이 젊은이와는 다릅니다. 노인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인, 병원이 반드시 생겨야 합니다.
―끝으로 연세대의 통합 당시 캠퍼스 분위기와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 = 우리가 연희고등학교라고 했어요. 대학에 들어가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교복 입고 배지 달고. 장기원 교수님이 특히 기억납니다. 등교 시간에 이공대학 정문을 지키고 서 있어서 교복 안 입고 오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저 뒤로 가서 먼저 들어간 친구가 옷을 벗어서 유리창으로 던지면 그것을 받아서 입고 다녔습니다. 또 당시 연세대는 학점이 안 나오면 그다음 학기에 학점을 따는 게 아니라 그냥 낙제였어요. 한 학년을 그냥 뒤로 물러앉는 거예요.
△김 = 유난스럽게 까다로운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백낙준 선생님도 유명하시고 최현배, 김윤경, 이길상, 장기원 교수님 등. 김윤경 교수님은 자기 딸 결혼식 때도 휴강을 안 하려고 따로 보강을 했던 분이고. 장기원 선생님은 구두 조사를 가끔 하셨어요. 그때는 구두에 쇠로 된 징을 박았어요. 구두 닳지 말라고. 그런데 쇠가 건물 바닥에 닿는다고 징을 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들들 볶아대니까, 1학년 다니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휴학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다 한 번만 더 적극적으로 대학 생활을 해 보자고 연세춘추에 들어갔습니다.
△박 = 교내 체육대회가 있는데 과별 체육대회였어요. 우리는 의예과 때만 신촌에서 공부하니까 최고학년이 2학년인데, 다른 전공과는 4학년이잖아요. 운동경기를 하면 “새카만 2년 후배가 건방지게 까분다”고 찍어누르려고 해요. 우리는 2년 후배이긴 하지만, 과를 대표해 나온 거니까 전공과 4학년하고 싸움도 하고 그랬어요.
△김 = 올 1월 연세대 재단 이사장에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됐는데, 허 이사장이 제 화공과 3년 후배로 태권도부였어요. 한 번은 장충체육관에서 연·고전 농구가 벌어졌는데, 그 전날인가 파고다 공원 앞에서 고려대 역도부가 연세대생을 혼을 냈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장충체육관에 응원하러 갔더니 농구부 입장 때 동수가 태권도부 애들을 데리고 호위병처럼 서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배를 잡고 웃어요.
김성훈·박효목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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