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下) ‘직업교육위탁’ 아현산업정보학교를 가다
플라워디자인반서 원예 배우고
칵테일 수업 들으며 대회 준비
제과제빵·미용 등 다양한 교육
대학진학 대신 취업 선택 학생
인문계 고교 학적 그대로 유지
48개 기업과 취업 MOU 체결
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다양한 꽃으로 구성된 조그만 화단들이 담벼락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눈에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화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 화단에는 화단을 꾸민 학생들의 애칭이나 이름을 적은 팻말들이 꽂혀 있었다. 서울의 모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인 박혜진(19·가명) 양은 지난 3월부터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박 양은 이곳 ‘플라워 디자인’ 반에서 꽃을 연구하고 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인문계 고교를 진학하기는 했지만, 박 양은 처음부터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체험학습을 통해 꽃꽂이를 경험한 뒤 자신이 꽃에 관심과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곳저곳 알아본 끝에 아현산업정보학교에 플라워 디자인 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올해 3월 입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학적은 종전에 다니던 인문계 고교에 그대로 있다. 매주 월요일에만 인문계 고교로 등교하고 나머지 4일은 아현산업정보학교로 등교해 꽃 관련 수업을 듣는다. 인문계 고교의 졸업장을 받으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원예 관련 실무지식을 쌓을 수 있다. 박 양은 “인문계 고교에 계속 있었다면 ‘졸업’만을 목표로 아마 수업시간에 잠만 잤을 것”이라며 “미적분 등 적성에 안 맞는 수업에 흥미를 못 붙였는데, 여기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박 양은 이곳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훌륭한 ‘플로리스트’(꽃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교육부가 시행하고 있는 ‘일반고 위탁 직업교육’의 수혜 학생들이다. 일반고 재학생 중 대학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한 대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훈련비용은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고 학생 중 대학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진로를 찾아 직접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며 “일반고 학생들을 위한 직업교육을 통해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회가 필요한 대상 학생은 약 2만3000명이다. 지난해 2월 졸업한 일반고 3학년 학생 43만7299명 가운데 대학(재수 포함) 등에 진학한 학생 40만4155명과 취업을 선택한 학생 1만454명을 제외한 학생이 2만2690명으로 집계됐다. 진학도, 취업도 못한 이들 고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직업 훈련기관에서 교육을 받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고를 다니면서 직업교육을 받은 학생은 1만2751명에 그쳤다. 만일 진학도 취업도 못한 2만3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당시 제대로 된 직업교육만 받았어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일반고 위탁 직업교육은 바로 이런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일반고 학생 중 대학 등에 진학할 뜻이 없는 1·2학년을 대상으로 △예비 직업과정 △전문대 연계 직업 위탁과정 △산업정보학교를 활용한 위탁교육 등이 시행되고 있다.
산업정보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취업률도 좋은 편이다. 아현산업정보학교의 경우 제과제빵과 미용·예술 등 서비스 계열 반 출신 졸업생 대부분이 취업을 한다. 지난해 이 학교와 학생 취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기업도 48개에 달했다.
다만, 워낙 취업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기업체들의 인력 수요가 많은 과를 중심으로 취업이 이뤄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학생들이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은 5일 “적성에 안 맞아 억지로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이곳에서는 자신의 꿈과 적성에 맞는 수업을 하다 보니 모두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어 수업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정책적 지원이 더 필요한 지점도 있다. 이 학교 엄은경 교사는 “과거에는 각 반에 연평균 800만 원쯤 지원금이 나왔는데, 지금은 700만 원도 안돼 실습실 기자재 구입 등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엄 교사는 “취업 특성화 과정을 운영하는 특성화고교의 경우 학생들이 9∼10월부터 취업에 나설 수 있게 돼 있지만, 산업정보학교는 법규에 묶여 12월이나 돼야 취업 전선에 나설 수 있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며 “산업정보학교 학생들도 특성화고 학생들과 동등하게 취업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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