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종편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시사, 예능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유독 드라마가 부진했다. 100억 원대 블록버스터라던 TV조선 ‘한반도’가 조기 종영하면서, 종편에 드라마는 한으로 남았다. 드라마는 방송사의 위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SBS가 일약 주류 방송사로 도약하게 된 계기가 바로 ‘모래시계’였다. 케이블 채널인 tvN의 경우도 ‘응답하라’ 시리즈, ‘미생’ 등 드라마들이 히트하면서 위상이 수직 상승했다. 이런 배경에서 후발주자 종편에 드라마는 특별한 의미였다. 네티즌들이 종편을 “종편답지 않다”고, 즉 “종합편성을 하지 못한다”고 평가절하하는 데도 드라마의 약세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와 같은 위상을 노리는 JTBC에 드라마의 약세는 더욱 뼈아팠다. 초기에 쓴맛을 본 후 몸을 사린 여타 종편과는 달리, JTBC는 드라마 부문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갔다. 작품적으로는 높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시청자가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도봉순’이 한 방에 역전시키고 있다. JTBC에선 과거 ‘무자식 상팔자’와 ‘밀회’라는 두 편의 히트 드라마가 있긴 했다. ‘도봉순’은 시청률로도 그 두 편을 넘어섰지만, 트렌드를 이끄는 트렌디 드라마라는 지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트렌드의 최전선에 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렇게 투자를 해도 요지부동이던 시장이 이번엔 왜 돌아선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기획의 힘이었다. 이 작품은 도봉순이라는 괴력을 가진 20대 여성의 이야기다. 괴력도 보통 괴력이 아니다. 달려오는 자동차를 맨손으로 막을 정도로 엄청난 힘의 소유자, 즉 슈퍼 헤로인급 영웅이다. 그가 사는 곳은 재개발을 앞둔 우범지역으로 그려진다. 조폭과 동네 양아치, 그리고 여성 납치범 등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그런 불안의 지역을 도봉순이 힘으로 평정한다는 이야기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등 잇따른 강력사건으로 여성들의 불안 심리가 커졌다. 불안과 공포, 자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이 시대 여성들 정서의 기본값이 됐는데 바로 이럴 때 ‘도봉순’이 괴력을 가지고 당도한 것이다. 여성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려는 기획이다. 도봉순이 조폭 수십여 명과 당당히 맞서 손가락을 이소룡처럼 까딱까딱하며 ‘드루와~ 드루와~’ 할 때 시청률이 폭발했다.
주인공 박보영은 평범한 여성들의 감정이입을 위한 캐스팅이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에, 작고 연약해 보이며, 평범한 스펙의 구직자 역할에 박보영이 어울렸고, 시청자는 그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구직자였던 주인공이 마침내 게임회사에 들어가 ‘사원증’을 목에 건 기획실 직원이 되어 기획회의에 참여한다는 설정도 시청자를 대리만족시켰다. 이렇게 이 시대 여성의 불안, 공포, 무력감, 욕망 등을 정확히 읽어낸 기획이 시청률 대박을 만들고, 주인공들을 배우 평판 1위로 만들고, 종편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그야말로 기획의 괴력이다.
문화평론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