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벚꽃 개화가 유독 느리다. 남도 땅의 첫 화신(花信) 매화는 일찌감치 피어났지만, 궂은 날씨가 계속되면서 벚꽃은 주춤거리다가 이제야 남도에서 막 개화를 시작했다. 지금 남도 땅의 벚꽃 개화율은 50% 남짓. 이번 주말쯤 절정을 지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벚꽃은 작은 벚나무 여러 그루보다 굵은 나무 한두 그루의 것이 훨씬 더 압도적이다. 의외인 것은 벚나무의 평균 수명이 60년 남짓이라는 것. 사람의 수명보다 짧은 셈이다. 간혹 100년이 넘은 고목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문 경우다. 벚나무는 빨리 자라고 일찍 죽는다. 30년생 벚나무만 돼도 거대한 꽃그늘을 드리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심은 지 10년만 돼도 꽃이 제법 화려해서 기왕에 알려진 곳들이 아니라도 잘 찾아보면 벚꽃 명소는 전국 곳곳에 있다. 인파에 치이지 않고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골라봤다.
30년생 왕벚나무
전남 보성 대원사
전남 보성군 문덕면의 고찰 대원사는 널리 알려진 절집은 아니지만, 1980년부터 가로수로 심기 시작한 왕벚나무 40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길 끝에 있다. 가로수 벚꽃은 나무가 굵고 가지가 많을수록, 또 길이 좁을수록 더 화려하다. 순천의 주암호 쪽에서 대원사로 드는 길이 넓지 않아서 양쪽 벚나무 가지가 서로 손을 맞잡듯 하늘을 가려 말 그대로 ‘벚꽃 터널’을 이룬다.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는 쌍계사로 드는 ‘십리벚꽃길’과 비교하면 거리가 짧긴 하지만, 벚꽃의 정취만으로는 모자람이 없다. 게다가 꽃이 피면 차와 사람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루는 십리벚꽃길보다 한결 혼잡도가 덜하다는 점 역시 매력이다. 대원사로 드는 길뿐만 아니라 인근 도로에 30여 년생 왕벚나무 가로수 길이 있다.
대원사의 행정구역은 전남 보성이지만, 주암호가 있는 순천 쪽에서 들어간다. 호남고속도로 순천 주암 IC로 나와서 주암호를 끼고 달리다가 순천과 보성의 경계쯤에서 죽산교를 건너가면 대원사로 드는 길이 나온다. 순천을 경유해서 가야 하는 만큼 순천의 낙안읍성, 송광사 등과 연계하면 좋겠다. 이번 주말인 8일부터 사흘 동안 대원사 입구의 군립 백민미술관 광장에서 보성벚꽃축제가 열린다.
4월에 피는 마지막 벚꽃
전북 진안 마이산
벚꽃은 피어서 길어야 보름 남짓. 절정의 시기는 1주일 안팎이다. 급작스레 밀려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남도 쪽에서 시작한 벚꽃 개화의 전선(前線)이 중부지방을 지나는 때는 보통 4월 중순 무렵. 벚꽃잎 분분히 날리는 이 무렵에도 절정의 벚꽃을 만날 기회는 남아있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은 지대가 높고 일교차가 커서 전국에서 벚꽃이 가장 늦게까지 피는 지역 중 하나다. 서울 여의도의 벚꽃이 질 때쯤 마이산의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마이산의 벚꽃 길은 이산 묘에서 탑사에 이르는 2.5㎞의 구간이다. 벚나무가 촘촘하게 심어져 있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나무가 굵거나 수형이 크지 않다는 것. 이곳의 벚나무 수령은 20년 남짓이다. 그래도 남부주차장 쪽에서 마이산 탑사로 드는 길목을 환하게 밝히는 벚꽃길이 제법 운치 있다. 마이산의 벚꽃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중의 하나가 저수지 탑영제다. 해 질 무렵 고요한 저수지 수면 위로 드리우는 마이산의 반영과 호반에 흐드러진 벚꽃이 봄날의 정취를 더해준다.
80여 기의 돌탑이 늘어선 탑사를 둘러본 뒤에 은수사와 천황문을 지나 북부주차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내친김에 마이산 산행을 겸할 수도 있다. 눈부신 신록 사이를 걷는 두 코스 모두 2시간 남짓의 가벼운 산행코스다.
드라이브하며 봄 만끽
경북 구미 금오산
경상권의 벚꽃 명소라면 진해, 경주, 하동이 대표적이지만 이런 곳들의 명성에 가려진 곳들도 적잖다. 경북 구미의 금오산 벚꽃길도 그중 하나다. 금오산으로 드는 초입까지는 한적한 벚꽃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지고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금오산 아래 저수지 주변도 벚꽃으로 환하다. 이곳의 매력이라면 무엇보다 붐비지 않는다는 점. 꽃놀이를 즐기려는 지역 주민들이 있어 ‘호젓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드문 편이라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
벚꽃길은 구미 시내에서 금오산 초입으로 이어지는 각산사거리부터 구미도서관과 저수지 금오지를 지나 금오산 등산로 초입까지 이어져 있다. 각산사거리부터 금오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벚꽃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에는 교통체증의 짜증이 없다. 벚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길을 충분히 즐기며 달릴 수 있다. 드라이브를 즐긴 뒤에는 걸으며 벚꽃을 즐길 차례. 금오산 초입의 저수지 금오지를 끼고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저수지 주변을 걸으며 벚꽃을 즐기면 된다.저수지 뒤편의 자연환경연수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차량을 통제해 여유 있게 벚꽃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구미의 금오산에서 차로 30분쯤 거리인 경북 김천시 농소면 일대에는 4월 중순쯤 구릉마다 자두꽃이 만개한다.
6㎞에 벚나무 4000그루
충남 보령 보령댐
충남 보령에는 ‘주산 벚꽃길’이 있다. 외지인들에게는 낯설지만 보령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명소로 꼽혀온 곳이다. 보령댐 하류 웅천천을 따라 이어지는 6㎞ 도로 구간에 20여 년생 벚나무 40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다. 나무의 수령이 적어 수세가 크지 않은 데다 도로에 보도가 따로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벚꽃이 만개할 때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되기에는 그다지 모자람이 없다. 또 벚꽃길 인근에 문인들의 문학비를 세워놓은 ‘시와 숲길 공원’을 조성해 짧긴 하지만 걸으며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벚꽃길은 주산초교 앞에서 보령댐으로 이어진다. 주산초교 부근 벚꽃길 들머리에 ‘보령댐 벚꽃길’을 알리는 큼지막한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보령 주산 벚꽃길의 벚꽃 개화는 서울보다 반 발짝 늦다. 서울 여의도 벚꽃이 이번 주 중반 개화가 예상되니 이번 주말인 8일쯤 개화가 시작돼 다음 주 주말까지 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일부터 보령댐 물빛공원에서는 벚꽃 개화에 맞춰 ‘주산 봄꽃축제’가 열린다.
박경일 기자 par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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