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모든 날이 좋았다.”
얼마 전에 끝난 인기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이 된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봄 개나리보다 더 노란 서점 앞에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젊은이들로 활기차다. 서점 외부뿐만 아니라 서가 사이에서 주인공이 된 듯 환하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관할인 인천 동구청에서는 헌책방거리 입구에 드라마 주인공의 얼굴이 크게 들어간 안내간판을 세워 이곳이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사실 배다리마을은 드라마 도깨비로 조명을 받기 전부터 유명한 마을이었다. 1998년 인천시가 이 마을을 둘로 나누는 산업도로를 건설하려 하자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과 지역 예술가, 문화 활동가들이 나서면서 배다리마을은 지역의 문화가 살아있는 마을로 변하기 시작했다. 낡은 마을 담장에 그림을 입히고 옛 양조장을 전시장으로 만드는 등 기존의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새롭게 활용하는 방식을 취한 덕분에 시공을 넘나드는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헌책방 거리를 포함한 마을 전체가 세월의 변화를 피해간 것처럼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남길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헌책방거리가 시작되는 배다리사거리에 있는 낡은 민트색 2층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흥상회라는 예스러운 간판을 단 이 건물은 언제 지어졌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본식 실내외 공간의 형식으로 보아 인천개항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배다리라는 이름도 이곳에 물건을 가득 실은 배를 직접 댈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일대는 커다란 시장이 있던 곳으로 제수용품을 판매했던 상회 주인이 자신의 성에 흥할 흥 자를 붙여 조흥상회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빈집으로 방치되다가 지금은 배다리마을을 소개하는 배다리 안내소를 비롯해 소품 가게와 책방,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흥상회 건물의 가장 북쪽 모퉁이, 만화 그림 바탕에 ‘요일가게 다 괜찮아’ 라고 적힌 다소 촌스러운 간판이 붙어 있는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높다란 키를 자랑하는 붉은 벽돌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건물은 조흥상회의 창고로 추정되는데 2층으로 돼 있던 것을 헐어내 높은 높이를 가진 단층 공간이 됐다. 강렬한 붉은색을 뽐내는 실내에는 수공예품을 전시하는 선반이 설치돼 있고 한쪽 구석에는 커피와 음료를 판매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10평이 채 안 되는 요일가게는 운영자가 여럿이다. 그것도 요일마다 운영자가 바뀐다. 이는 한 공간을 여러 명이 공유하는 아이디어에서 생겨난 것인데 이 공간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요일을 정해 그날엔 자신이 가게의 운영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월요일에는 글쓰기 교육이 이뤄지고 수요일에는 소셜다이닝(Social Dinning·함께 먹기), 목요일에는 영화 상영, 토요일은 커피 카페, 일요일은 무인점포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처럼 요일마다 다른 사람이 다른 내용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요일가게로 불린다. 벽에 설치된 선반들은 ‘가게 인 가게’라 불리는데 지역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 두면 요일가게 운영자가 대신 판매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요일가게 운영자들은 주로 지역주민들로 구성돼 있는데 작가, 문화 활동가, 새로운 의미와 일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공간의 공유와 공조를 통해 상생의 길을 찾는 독특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운영자들은 함께하니 서로 의지도 되고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 방문객 입장에서도 매일매일 변하는 요일가게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2014년 12월에 시작해 이제 만 2년을 조금 넘긴 이 방식은 따라 하는 곳이 생겨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2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보다 요일가게의 활동이 더 활발해진 것 같진 않았다. 요일가게가 판매보다는 지역의 사랑방 역할에 더 의미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수익형 공간들이 더 활발하게 발전되길 희망한다. 수익을 담보하지 않은 공간의 미래가 험난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일가게의 부제인 ‘다 괜찮아’가 교류이자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 오래도록 동네 속 괜찮은 공간을 보고 싶은 까닭이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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