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아 단장이 지난 3월 31일 서울 서초동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사무실에서 “우리 극단의 작품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웃음을 짓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송정아 단장이 지난 3월 31일 서울 서초동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사무실에서 “우리 극단의 작품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웃음을 짓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송정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단장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장은 찾기도 힘들고, 휠체어가 들락거리면 시설이 손상된다고 대관 신청부터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 장애인 연극이 살아남으려면 전문 공연장 건립, 운영 자금 지원 등 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인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1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창립 멤버인 송정아(여·44) 단장은 16년이 지나도록 크게 개선되지 않은 장애인 예술계의 현실을 이같이 개탄했다.

송 단장은 “장애인들이 무대에서 ‘라이브’로 공연해야 하는 연극을 하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의사소통 능력도 좋아진다”며 “장애인들이 연극을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장애인 예술단체를 적극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중증 장애를 딛고 연극배우, 연출자, 기획자, 각본가, 극단 단장까지 ‘1인 5역’을 해내며 장애인 연극계를 지키고 있는 송 단장을 지난 3월 31일 서울 서초동 휠 사무실에서 만났다.

송 단장은 뇌병변 장애(뇌성마비·뇌졸중 등 뇌의 병변으로 발생하는 신체적 장애) 1급이다. 그가 뇌병변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솔직히 ‘인터뷰가 무난히 진행될 수 있을까. 질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상대방 발음이 어눌해 답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채 극단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전동 휠체어에 앉은 송 단장은 1시간 30분가량에 걸친 인터뷰 내내 또렷한 말투로 조리 있게 답변했다. 기자답지 못하게 선입견에 빠져 취재원을 만났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송 단장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못했다. 미숙아로 태어나, 돌 무렵에 고열을 앓으면서 뇌에 손상을 입었다. “당시 경기(驚氣)를 하면서 뇌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마 장애로 이어진 것 같대요. 학교도 재활학교에 다녔어요. 저 때만 해도 일반 학교에서 장애인을 잘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삼육재활원에 학교가 있어 거기서 초·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죠.”

졸업 후 송 단장은 다른 장애인을 돕는 일에 뛰어들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우리나라에 장애인자립생활이란 개념이 한창 들어오던 시기에 제가 같이 교육을 받게 됐어요. 일본 연수도 갔다 오고, 자립생활운동을 하고 상담을 하면서 사회복지에 관심이 생겨서 그때부터 공부를 했죠.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느라 사이버대학을 통해 공부했어요.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면서 극단 일도 시작했고요.”

송 단장은 ‘장애인독립생활연대’의 초창기 멤버다. 자립생활센터 설립 등이 장애인독립생활연대의 주 업무였지만, 장애인들이 같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던 중 연극에 주목하게 됐다. “동료 장애인들을 상담하면서 보니까, 장애인들이 가장 바라는 게 밖에 나와 활동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런 기회가 주어진 데가 별로 없어서, 장애인이 참여하는 연극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죠.”

송 단장 자신이 연극을 접한 뒤로 자신감을 얻고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게 됐던 만큼,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재활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집에만 있다가 교회에 나갔는데, 대형 교회라 ‘장애인부’가 있었어요. 그 교회에서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신자들이 참여하는 연극 무대를 마련했어요. 저도 당시엔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겁이 많았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때만큼 떨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웃음). 그 무대에 한 번 서고 나서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무대에 오른 뒤 제가 달라졌으니까,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그 경험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장애인 연극의 장점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입은 분들은 대인관계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이 좋은 게, 영화나 다른 예술은 NG가 나면 다시 찍을 수 있고 틀리면 다시 할 수 있지만 연극은 그냥 무대에 올라가서 ‘생’으로 하는 거라서 틀려도 자기 몫이죠. 무대에 올라가면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마인드를 바꿀 수 있고, 공연을 끝냈을 때 자신감도 얻을 수 있어요. 연극을 하면 발음이나 호흡도 좋아집니다.”

장애인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 외에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공헌하는 것도 휠의 목표인 만큼, 휠은 처음부터 단원을 장애인으로 제한하지 않고 비장애인도 함께하는 극단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장애인 극단 운영은 생각보다도 더 힘들었다. 송 단장은 ‘만능 연극인’이 돼야 했다. “여기 오래 있다 보니까 연기, 기획, 연출 다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배우나 기획은 지금까지 많이 해왔으니까 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연출은 지난해 처음 해보니 정말 힘들더군요. 하지만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송 단장의 연출가 데뷔작은 ‘인간에 대한 예의’란 단막극이다. 각본과 연출 모두 그가 맡았다. 활동보조인 제도가 없던 시절, 시골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힘겹게 살다가 생을 마감한 장애인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 각본을 처음 써본 건 2003년 휠이 공연했던 ‘민들레’라는 작품으로, 여성 장애인의 삶을 다뤘다.

송 단장과 휠 단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국내 장애인 연극의 실상은 여전히 처참한 수준이다. 휠은 올해 2월 사무실을 옮겼다. 전에는 연습실도 갖추고 있었지만, 이제는 오피스텔에 사무실만 두고 있다. 연습실 임차료가 부담됐기 때문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공연장 대관이다. “물론 재정적으로도 힘들지만, 공연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게 무대인데 공연장 잡기가 너무 힘들어요. 배우뿐 아니라 관객도 장애인이 많기에 공연장에 장애인이 접근하기 편해야 하는데, 그런 공연장을 찾기가 힘듭니다. 대학로에 극장이 많이 있지만, 그중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 데는 1%도 안 될 거예요. 공연 한 번 하려면 몇 달 동안 장소를 알아보고 섭외를 해야 합니다.”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찾더라도, 막상 장애인이 공연한다고 하면 장소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태도가 바뀐다. “대관료도 똑같이 내는데…. 아무래도 휠체어가 들어가게 되면 무대나 건물이 파손될 우려가 있다고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곳, 즉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곳은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어요. 200석 이상 되는 넓은 곳들이어서 대관료도 너무 비싸고, 객석을 채울 만큼 관객을 유치하기도 힘들고요. 보통 소극장이 80석 규모인데, 장애인 극단이 공연하면서 80석 채우기도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저희에게 딱 맞는 공연장은 솔직히 말해 하나도 없는 거죠. 게다가 장애인 극단이 공연하려면 일반 극단보다 비용이 더 듭니다. 휠체어가 드나들 경사로가 없으면 직접 만들어야 하니까요. 대학로에 있는 극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무대 위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는 구조여서 객석 아래에서부터 무대까지 경사로를 놓았어요. 그 비용이 무대 만드는 비용과 거의 비슷해요. 그 돈을 무대 장비에 더 투입하면 공연의 질이 훨씬 높아질 텐데, 너무 아쉬워요.”

공연으로 수익을 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상업적으로는 힘든 게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다 보니까, 복지 측면에서 장애인 지원은 늘어도 예술 쪽은 여전히 지원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 같은 데는 오히려 예술단체 쪽을 많이 지원해 준다던데. 우리가 아무리 퀄리티를 높여 공연해도, 장애인 연극이라는 인식 때문에 관객이 많지 않아요. 또 일반 연극이나 뮤지컬도 똑같은 작품을 1년 이상 해야 어느 정도 수지타산이 맞는다던데, 저희는 고작 일주일∼열흘 정도 공연을 하는 거니까. 외부의 지원 없이는 정말 힘들죠. 솔직히 단원들에게 따로 급여도 주지 못합니다. 생계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공연 있을 때만 모여서 연습하죠.”

송 단장은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장애인 연극은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장애인단체에서 함께 일하다 만났던 남편도 처음에는 연극을 같이 했는데, 지금은 다른 일을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에요. 전에는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남편이 제 일을 많이 도와줬죠. 남편은 뇌병변 장애 2급인데, 그나마 휠체어는 안 타니까….”(돈벌이는 남편이 하고 있다.)

자금이 없으니 공연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올해도 공연 준비는 하고 있는데, 공모사업에 몇 개 지원했어요. 그중에 선정되는 게 있으면 공연을 할 수 있고, 다 탈락하면 못 하는 거죠.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장애인 예술단은 ‘한빛예술단’이 유일합니다. 거기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예술 쪽으로 교육하는 곳이어서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거예요. 장애인 체육 쪽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애인 문화예술이 체육 쪽에 소속돼 있었어요. 2014년쯤 문화예술 분야가 따로 떨어져 나오긴 했는데, 예산 자체가 체육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초·중학교 중심으로 연극을 통한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을 하게끔 돼 있어서요. 그런데 그것도 학교를 저희가 알아서 찾아야 해요. 교육청에 연락해 봐도 지원해 주는 건 없고, 개별적으로 학교에 연락해 보라고만 합니다. 오히려 학교 선생님들이 알고 장애인 연극 공연을 해달라고 연락하시기도 하는데, 그 경우 출연료도 거의 없습니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10명 정도가 움직여야 하는데, 한두 명이 찾아오는 음악 공연처럼 생각하고 예산을 짜는 경우가 많아요.”

송 단장은 장애인 극단을 위한 전용극장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예술문화위원회 기금으로 지난해 대학로에 ‘이음센터’란 곳이 생겼지만, 제대로 된 공연장의 형태로 지어진 곳은 아니다. “미술 작가들이 입주해서 작업할 공간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연습실로 쓸 만한 곳밖에 없어요. 마땅한 조명도 없고, 무대도 간이 무대이고 분장실도 없으니 거기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연간 예산이 50억 원이라는데 그게 건물 관리 비용입니다. 극단 지원 예산이 아니에요. 극단에 1억 원씩만 나눠줘도 공연을 몇 번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연극을 놓지 못하는 건 장애 인식 개선에 공헌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이다. “저희 공연을 보면서 비장애인 관객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비장애인 분들이 ‘장애인 연극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구나’ 하는 걸 처음 느껴보면서 장애인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고 극장 문을 나서게 되는 거죠. 그런 보람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휠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