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 이화여대 교수·유아교육 / 세계유아교육기구 세계회장

유엔의 아동권리헌장에 따르면 ‘한 사회에서 모든 어린이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교육을 받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다. 그런데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이 기회들이 때에 따라서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차별받는 경우가 있다. 이 차별이 커지면 사회는 양극화에 따른 격차가 커지는데, 전 세계적으로 점차 더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등장할 정도로 심각하다.

2015년 9월, 제70차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는 향후 15년간 국제사회가 이행해야 하는 ‘우리 세계의 변혁: 2030 지속 가능한 개발 의제’를 발표했다. 유아교육도 해당 의제의 세부 목표 중 하나로 포함돼 있는데, 그 이유가 있다.

우선, 국가 및 사회가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에 관심을 갖고 빨리 개입하면 할수록 그 효과가 매우 크다. 이는 사회 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가 인간의 두뇌 발달과 건강, 심리적인 안녕감, 학업성취도 등에 영향을 미치며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누적돼 시간이 갈수록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그리고 단순한 개입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교육 서비스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유아를 교육하는 교사의 비율, 질 높은 교육과정의 안정적인 운영 등이다.

다행하게도 정부는 이런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해 모든 아이가 어디서든 수준 높고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2012년부터 ‘누리과정’을 도입, 운영하고 있다. 만 5세를 시작으로 2013년에는 만 3∼4세로 확대해 지금은 만 3∼5세 전체가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누리과정을 제공받는 어린이의 전체 취학률은 2012년 87.9%에서 2016년에는 92.1%까지 늘었다.

특히, 농어촌에서의 누리과정 수혜율(연평균 2.5%포인트)은 도시(연평균 1.0%포인트)보다 증가 폭이 높아 지역 간 교육 격차가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누리과정이 처음 시작된 2012년 이후 발표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누리과정은 발달 및 성취 측면에서 저소득층·다문화·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의 유아들에게 더 의미 있는 향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적응을 위한 누리과정의 중재 효과는 부모의 학력이 낮을수록, 중·소도시 및 읍·면 지역 등 규모가 작을수록 두드러져 취약계층에 보다 효과적이었으며, ‘출발점 평등’ 보장에 기여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에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교육 기회를 보다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교육복지 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발표하면서 유아기부터의 교육 격차 해소를 강조했다. 저소득층 학부모의 학비 부담은 낮추고 유아교육의 질은 높이는 ‘공공형 사립유치원’의 도입, 누리과정의 질 제고, 학부모의 돌봄 수요에 대응한 ‘엄마품 온종일 돌봄교실’ 운영 활성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나아가 영·유아기 교육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원화돼 있어 생애 출발 단계부터 교육의 질적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아교육·보육 통합을 적극 추진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아직은 세부 과제별로 구체안이 제시되지는 않았으나, 유아기를 교육 격차 해소의 출발점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처음 시작할 때 목표와 대상을 분명하게 하고 전달 체계를 잘 만들지 않으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향후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뤄져 더욱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 수립돼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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