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여전히 근대와 전근대가 공존하는 지대에 놓여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체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이 근대성의 지표라면 저주와 복수가 반복되는 정치문화, 중·선진국 바닥권의 사회통합지수는 전근대성의 표징이다. 극단적 갈등을 넘어 분열된 사회구성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건 대한민국 정치가 추구해야 할 근대성의 요체다. 그건 실패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 프로젝트이며, 탈근대적 방식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미완의 기획’이다. 이를 실현하는 분명한 길 중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30여 일 앞으로 닥친 대선에서 더 나은(덜 나쁜)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누가 무한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분열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일궈낼 것인가.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는 근대성의 기획을 강력하게 실천하고자 했던 계몽 군주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영조는 1724년 즉위하자마자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를 내렸다. 탕평의 핵심은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연정(聯政)의 구성과 균형 잡힌 인사’다. 영조가 노(老)·소(少) 양론(兩論)을 고루 등용하는 연립내각을 고안하자, 정조는 1776년 집권 후 벽파와 시파에 소수세력 남인까지 두루 입각시키면서 할아버지 군주의 연정 정신을 계승했다. 영조가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자 정조 역시 척신과 환관을 배제하고 능력 있는 서얼 출신들을 기용했다.
서구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깨어나고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등장한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해 조선에서도 ‘근대성의 맹아’가 싹텄지만, 1800년 정조 사후 탕평정책이 끊기면서 나라는 급격히 쇠락해 갔다. ‘모럴 폴리틱’(禮治·예치)을 근본으로 했던 붕당정치는 내 편과 네 편을 우(友)·적(敵)으로 구분하는 패권정치로 대체됐다. 노론 세력의 패권정치는 조선이 강제 병합된 후 일제로부터 협력의 대가로 귀족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조선인 76명 중 64명이 노론이었고, 남인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통합을 향한 근대성의 기획은 현대의 과제로 넘겨졌다. 하지만 우·적 논리의 독성과 영호남을 볼모로 한 듀오(duo) 폴리의 뿌리 깊은 마성(魔性)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직선 대통령제를 쟁취한 ‘1987 체제’ 성립 이후에도 지금까지 근 70년을 이어오고 있다.
미완의 기획 논쟁은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제기한 이후 서양 지성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하버마스는 탈근대의 이론들이 근대성의 과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버마스의 시선은 유럽의 합리적 재구성, 즉 유럽 통합이라는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로 향해 있다. 하버마스의 꿈은 이뤄지는 중이다. 자유와 정의, 연대와 소통에 기초한 통합은 인류 보편의 과제다. 우리에게 통합은, 정조 사후 200년 이상 실패만 거듭해온,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완의 정치 기획이다.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흐름이 지금 영호남의 심장인 광주와 대구에서, 청년과 장년층의 의식 속에서, 극단의 대립을 거부하는 중간지대에서 꿈틀대는 게 느껴진다. 19대 대선은 대한민국을 통합의 시대로 전진하게 하는 환희의 제단이 될 수 있을까.
mi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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