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편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한 손원평 작가의 첫 소설 ‘아몬드’(창비)를 읽으며 밑줄 그은 한 대목이다.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지만, 청소년 소설이라는 대상을 한정하는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 어린 친구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마음을 울릴 소설일 뿐이다.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뇌 이상으로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 눈앞에서 동네 구멍가게 아이가 죽어가는 걸 보고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괴물 소년이다. 엄마는 아들이 평범하게 살아남길 바라며 남들이 웃으면 웃고, 울면 슬퍼하고, 뭔가를 주면 고마워해야 한다며 주입식 감정 수업을 시킨다. 하지만 어렵게 이어지던 이들의 일상은 비극적 사건으로 깨지고 윤재는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물론 그는 가족의 부재에도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이어 또 한 명의 괴물 소년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 아동보호시설과 소년원을 전전한 소년 곤. 윤재가 선천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곤은 너무 많은 고통과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인물이다.
이어 소설은 본격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두 소년이 어떻게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 마음을 열고,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두 존재가 보여주는 뜨거운 사랑에 울컥해진다.
타인에 대한 이해, 타인과의 소통, 타인을 향한 사랑의 물꼬가 터져버린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윤재는 이제 희로애락을 감지할 수 있을까.
인용한 문장은 에필로그에 나오는 윤재의 독백이다. 그는 자기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비극일지 희극일지 모르지만 기꺼이 느끼는 대로 부딪혀 보겠다고 한다. ‘느끼는 대로’ 부딪혀 보겠다는 걸 보면 그는 최소한 무감각한 괴물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장은 윤재의 독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말일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내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인생의 맛을 선택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능한 한 힘을 다해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느끼고, 사랑하며 그 힘으로 다가오는 미지의 삶 속으로 담담하게 나아갈 뿐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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