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 / 마크 크레퐁·프레데릭 웜 지음, 배지선 옮김 / 이숲

“자기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프랑스 철학자 장켈레비치의 준엄한 선고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1940년 반유대주의 법에 의해 교수직과 프랑스 국적을 박탈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나치의 범죄에 대해 “사람들이 용서할 수 있는 범위로는 공포의 폭을 측정할 수 없는”, 따라서 “합당한 처벌과 속죄, 시효가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용서’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는 “누가 희생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공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정치가가 희생자들에게서 용서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끔찍한 범죄의 흔적이 ‘기억에 암’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권위에 준거해 용서에 동의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고 “용서는 사람들이 죽어간 집단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는 말로 용서의 불가능성을 주장했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43년부터 5월 혁명이 일어난 1968년 사이, 프랑스에서 벌어진 폭력적 상황과 이에 맞서 사유하고 행동했던 열두 명의 현대 철학자의 사상과 논쟁을 다룬다. 이는 폭력과 용서의 문제로 집약된다. 사르트르에서 출발해 카뮈, 메를로-퐁티, 카바이예스, 시몬 베유, 캉길렘, 레비스트로스, 들뢰즈, 푸코,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현대 철학자들이 총동원됐다. 일제강점과 군사독재를 겪으며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지나온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용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장켈레비치가 와 닿는다.

독일에 대한 장켈레비치의 분노는 세계 곳곳에서 지속적인 반향을 얻었다.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의 봉기를 기리는 기념비 아래 무릎을 꿇은 역사적인 장면은 이 같은 오랜 분노와 기다림의 결과였다.

이는 또한 독일인들이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려 살지 않도록, 늘 과거의 흔적에 얽매여 살지 않도록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일본과는 달랐다. 책에는 일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저자인 철학자 마크 크레퐁은 “지금도 일본이 그러듯이, 많은 정부가 과거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데 주저하는 태도를 비판할 수 있고, 용서를 구하거나 허락하는 문제가 개인이 민중과 역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능력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고 일본을 거명한다.

브란트의 사과는 독일인에게 ‘개인이 민중과 역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결여됐을 때 ‘위안부 합의’ 같은 허투른 방식이 나오고, 이는 절대 사과와 용서에 다가갈 수 없다. 책에 나오는 “용서를 구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모두 담론, 법령, 위원회 혹은 법률안 따위에 의지해서 미리 정해진 언어에 끼워 맞추고 제도화하는 오류”라는 표현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딱 들어맞는다. 장켈레비치의 준엄한 선고는 최근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양민학살 등의 관여를 부인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정확히 적용된다. 이에 대해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섣부른 용서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고 한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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