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의 작동은 충분한 정보를 가진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전제로 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정보에 노출되고 있을까? 포털에서 유력 후보의 이름을 검색하면 ‘부인’ ‘조폭’ ‘아들’ 등이 관련어로 뜬다. 검증이라는 포장으로 네거티브가 횡행하기 때문이다. 후보 아들이나 부인이 핵심 선거 쟁점이 되는 네거티브 선거는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
네거티브는 민주주의를 담보로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려는 이기적인 캠페인 전략이다. 네거티브가 횡행하는 것은 정치라는 영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상품 광고에서는 네거티브가 없다. 경쟁사끼리 상호 비방전을 하면 해당 상품에 대한 이미지 실추로 시장 자체가 위축돼 오히려 이윤이 줄기 때문이다. 정치는 다르다. 경쟁자보다 한 표만 더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전체 시장의 규모는 후보에게 중요하지 않다. 즉, 네거티브는 민주주의라는 시장을 파괴하는 대가로 이득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청산해야 할 적폐다.
어쩌면 우리 모두 공범일지 모른다. 우선, 네거티브를 조장하는 언론들도 문제다. ‘팩트체킹’이란 개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모든 언론이 유력 후보들의 아들과 배우자 ‘검증’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팩트체킹인지 숙고가 필요하다. 반면 정책 검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유권자들도 진영 논리를 초월해 아들이나 부인 문제가 아니라, 후보자의 정책 입장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민주주의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
국민 사이에는 대한민국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불안이 팽배하다. 지난 수개월 간 모든 이슈를 덮어 버렸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끝나고 다시 냉정한 현실과 맞닥뜨렸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경제성장률은 2% 초반대로 추락했지만, 유력 후보들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불분명하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에도 대책을 제시한 후보는 없다. 그냥 앉아서 당하는 형국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끝자락인데 자율주행 자동차나 드론 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화는 끝났다”며 선제타격 가능성마저 내비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후보 ‘아들’이나 ‘배우자’가 대선의 핵심 쟁점이 돼야 할까?
여론조사의 척도 중 ‘감정온도계’라는 것이 있다. 0에서 100도의 척도에서 0도는 해당 정치인에 대해 ‘가장 차가운 감정’, 100도는 ‘가장 따뜻한 감정’을 나타낸다. 50도는 ‘중립’이다. 필자가 문화일보와 공동으로 지난 3월 28~30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어느 후보도 감정온도계에서 50도를 넘지 못했다. 모든 후보가 평균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정치에서 네거티브가 판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대해 가진 부정적 고정관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모든 정치인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긍정적인 정보는 불신하고 부정적인 정보는 쉽게 믿게 된다. 네거티브가 효과적인 캠페인 전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대선도 모든 유권자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살 수밖에 없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된다면, 그러고 싶은 유권자도 많을지 모른다. 민주주의 시장을 파괴하는 대가로 당선을 노리는 네거티브는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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