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 선생은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 ‘만화일기’(왼쪽 사진)를 그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보고, 느끼는 것들을 자유롭게 그리는, 말 그대로 만화일기입니다. 50여 년 동안 200편이 넘는 작품을 만든 작가는 몇 년 전부터 마감도, 원고료도 없이 자유롭게 만화를 그리고 싶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럴 즈음 시인 고은의 일기 ‘바람의 사상’을 재미있게 읽곤 나도 만화일기를 그려보자며 시작한 것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리지 않고 그리고 싶으면 하루에 10장도 그리는 식으로, 2011년부터 시작한 만화일기가 35권째입니다. 그는 이것도 언젠가 출판이 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쓴 작품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일기의 시대입니다. 일기라는 이름을 단, 일기라는 이름을 달지 않아도 자신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들을 드라마틱하게 각색하지 않고 진솔하게 담아낸 책들입니다.

이번 주에는 푸드 포토그래퍼 김연미의 ‘365일 음식일기’(이봄·가운데)가 나왔습니다. 2016년 1월 1일부터 365일간 쓴 음식일기입니다. 계절과 시간에 맞는 제철 재료, 그 재료로 만든 음식, 이와 관련된 일상의 풍경들이 사진과 짧은 글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4월 14일을 펼쳐 보니 사각 유부초밥이 나옵니다. 오늘은 유부초밥을 해먹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2월에 나온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아트북스·오른쪽)도 기억에 많이 남는 일기입니다. 평범한 일본 여행사 직원이 스물일곱 살이던 1990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매일 그린 자신의 삼시 세끼 그림일기입니다. 이 두 권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고 글보다는 사진과 그림이 대세인 시대흐름을 반영한 것이지만 여행길에서 쓴 여행일기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일기는 누구나 쓰는 자기만의 내밀한 글입니다. 책으로 나온 일기들도 처음부터 남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쓴 것이 아닙니다. 쓰다 보니 주위에 알려져 책으로 낸 경우들이죠. SNS에 쓰는 경우 처음부터 공개된 일기이긴 하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 보는 풍경, 먹는 음식 같은 하루하루의 성실한 기록이 모여 스토리가 되고 책이 된 것입니다. 별것 없는 우리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삶이 된다는 것, 그래서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이 사소한 시간의 축적이라는, 잊고 지내던 사실도 증명하죠. 특별한 사람들의 화려한 성공담이 넘치고 지나친 자극에 지쳐 버린 시대,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작고 사소한 세계, 그 무자극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리는 듯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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