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 / 프란체스카 산나 글·그림, 차정민 옮김 / 풀빛

난민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단어는 피란민이다. 전후 세대는 전쟁을 겪은 윗세대로부터 청천벽력 같았던 전쟁 발발의 순간과 목숨을 건 피란의 날들을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40대 이상은 1983년 방영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애절한 장면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시작되는 비통한 노래가 전국을 뒤덮었던 그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야 하거나 헤어지고 영원히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이 있다는 것을 몹시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도 난민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은 끝나지 않았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일시적 평화조차 가지지 못한 지구촌 곳곳의 난민들은 어딘가를 두려움 속에 떠돌며 안전지대를 찾아 헤매고 있다.

프란체스카 산나의 ‘긴 여행’은 21세기 현재, 진행형인 한 난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탈리아 작가인 그는 난민 수용소에서 두 소녀를 만나 그들이 여기 도착하기까지 겪은 일을 직접 듣고 그 소녀의 시점에서 이 그림책을 그렸다. 어느 나라에서 어디를 거쳐서 어느 나라에 도착해 있는지는 책 속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소녀 가족의 차림새에서 이들이 시리아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소녀의 가족을 향해 검은 파도가 덮친다. 그 파도는 갈퀴처럼 달려들어 아빠를 앗아가고 삶 전부를 송두리째 부수어버린다.

온통 검은 바탕에 아빠의 안경과 선인장, 깨진 집기들만 나뒹구는 그림책 속 한 장면은 바라보기 고통스럽지만 전쟁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전쟁은 무엇도 선택적으로 파괴하지 못하며 모든 것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망연자실한 소녀의 엄마는 아이들과 남은 삶을 지키기 위해서 높은 산이 있는 나라로 피란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행상 트럭에 숨어 국경을 넘고 짐을 줄여가면서 길고 긴 밤을 걷는 가족의 피란길은 너무나 선명해서 전쟁의 현재성을 정확히 보여준다. 작가는 피란길을 처참하게 그리지 않고 색색의 아름다운 곡면으로 담아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끔찍한 것이 아니라 숭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동행하며 그들을 수호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하늘의 새떼는 군대도, 넘어야 할 국경도 없는, 자연 본래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도 전쟁의 위협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는 나날이다. 어린이와 이 책을 읽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지구촌 곳곳의 난민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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