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자문위원 제언 ⑥<끝>

정국 요동쳐도 ‘삶’은 지속
서민들의 이야기 알았으면


어떤 대통령을 원하느냐고? 신문사 데스크에서 화두 하나를 툭 하고 던져 놓는다. 어렵다. 남들과 똑같이, 이런저런 정책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고 답변할 수는 없다. 그런 중에 나날은 흘러간다. 아하, 오늘은 포항행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탈북작가들, 한국작가 중에 북한 문제를 쓰는 작가들과 함께 포항을 찾아간다. 작은 행사가 있다. 9시 25분 서울역발. 이경자 작가, 정길연 작가, 이성아 작가, 유영갑 작가, 권영임 작가에 이지명 망명 펜 이사장, 도명학 작가, 윤양길 작가 같은 분들이 함께했다. 두 시간 반 만에 벌써 포항역이다. ‘박태준 평전’을 쓴 이대환 선배가 마중을 나왔다.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모처럼 봄나들이 나선 들뜬 아이들 같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봤어? 정말 잘 만들었더라.” 이경자 선생이 문득 영화 얘기를 꺼내신다. 이 영화는 나도 보려고 벼르고만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일은 많고 시간은 안 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라도 찾아 관람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김민희가 연기를 너무 잘하던데요.”

“영화에 나온 데가 강릉 명주동이라던데.” “독일하고 강릉, 두 곳에서 찍었다나.” 버스에 탄 작가들이 한마디씩 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주연 여배우 얘기로 작년에 시끌벅적했다. 올 초에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이 여배우에게 돌아가서 또 시끌시끌했다. 작년 10월 말부터 나라는 대통령의 일로 조용한 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사랑과 이별과 슬픔의 영화는 만들어진다.

“이 영화의 의미가 뭘까요?” 나는 질문을 던지면서 홍상수 영화처럼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나라는 대통령의 책임을 둘러싼 문제로 편안한 날이 없었건만, 홍상수의 영화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곳에 늘 있는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 스스로 답변을 던져 놓고도 흔쾌하지 않다. 더 날카롭고 명료한 해답을 찾고 싶다.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게 있다. 거기에도 ‘문제’의 김민희 씨가 출연한다. 작중 인물인 영화감독 함춘수는 강의를 하러 수원에 간다. 그리고 남창동 어귀 수원 유스호스텔에서 여장을 푼다. 참 일상적이다. 나도 거기서 자본 적이 있다.

“진짜 가치라는 걸 전혀 못 느끼겠더라고요, 일하면서.” 영화 속에서 함춘수가 신상에 관해 묻자 상대역 윤희정(김민희 분)은 이렇게 대답한다. 윤희정은 직장에 다니다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나온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여자와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의 사랑 얘기다. 홍 감독은 어느 영화에서나 도대체 의미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느냐고 묻는다. 정치적·사회적 문제 따위는 안중에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통령 문제의 출구를 찾았다. 아하, 삶이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음을, 정치도 있고 경제도 있지만, 일상도, 사랑도, 적절하지 못한 관계도, 슬픔도, 의미 없음도 있을 수 있음을 아는 대통령. 좋을 것 같다. 그런 영화를 ‘같이’ 보고, 그런 영화도, 이야기도, 영화감독도 있을 수 있음을 납득하고, 이런 영화가 상영되고,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떠들썩하게 오가는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이라면 이상한 일은 벌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이해력 있는, 융통성 있는, 영화를 볼 줄 아는 교양 있는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혼자서라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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