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이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함으로써 6개월 가까이 이어져 온 ‘국정 농단’ 수사가 마무리됐 다. 최순실이라는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농단이 초래한 비극이다. 지난 대선 때 그런 비선 조직의 실체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헌정사를 보면, 이른바 비선 실세라는 측근 비리가 새로운 게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부터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되면서, 각 후보는 저마다 표심(票心)을 잡기 위해 연일 장밋빛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다시 과거와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의 공약뿐만 아니라, 후보 주변 인물에 대해서까지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선 실세라 불리는 측근은 집권 후 바로 권력의 핵심이 될 세력이므로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비선 실세는 매우 은밀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좀처럼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수립하는 데는 책사(策士)나 현자(賢者)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대통령의 처지에서는 다양한 외곽 단체들로부터 조언을 받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사적인 모임과 조직을 가지는 것도 무방하다. 문제는 공사(公私)를 혼동하는 경우에 생긴다. 예를 들어, 처음엔 지극히 사적인 모임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정치적 이익단체로 변질되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검증을 받으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매우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이다. 자연히 편 가르기 현상이 생기고 비선 실세에게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정권의 균열은 시작된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 대선 후보의 비선 조직을 둘러싼 시비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우려스럽다. 이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비선 조직의 그늘에 숨지 말고 이를 공식화하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도 애초에는 공식 직함 없이 백악관에서 아버지를 보좌할 계획이었지만, 공무원 윤리 규정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대통령 보좌관이란 공식 직함을 주었다.

비선 조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번 대선처럼 짧은 선거기간에 공약을 신속하게 만들고 홍보하기 위해 비선 조직은 매우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비선 조직에 의존하다 보면 당의 공식 기구가 무력해지고 집권 후에는 자기 지분을 요구하면서 권력 암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비선 조직은 뒤에 숨어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뿐 전면에 나서지 않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역대 정권의 하나회, 영포회, 십상시 등에서 보듯이 조직 내의 갈등이 터져 나올 때까지 그 실체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설사 전모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수습하기에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이제 23일 후면 새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이번 대선에서는 비선의 국정농단으로 추락한 국가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의 자질과 공약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특히, 어떤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혈연·지연·학연을 앞세워 권력에 접근하는 비선 조직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헌정사에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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