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블랙 드레스의 새로운 시대를 연 코코 샤넬의 1936년 리틀 블랙 드레스. 검은색 명품 드레스 시대를 열었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20세기 블랙 드레스의 새로운 시대를 연 코코 샤넬의 1936년 리틀 블랙 드레스. 검은색 명품 드레스 시대를 열었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이토록 황홀한 블랙 / 존 하비 지음, 윤영삼 옮김 / 위즈덤하우스

검은색은 색인가? 오랫동안 논쟁과 사유의 대상이 된 질문이다. 일단 검은색은 색깔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색깔 스펙트럼은 근본적으로 빛의 파장에 따라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고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옳다. 하지만 다빈치의 팔레트에도 검은 안료는 있었고 그의 작품 배경은 대부분 검은색이었다. 실제로 파란 잉크, 빨간 잉크처럼 검은 잉크가 있고, 적갈색 페인트처럼 검은 페인트가 있다. 이에 프랑스의 색채 역사가 미셸 파스투로는 오랜 논의 끝에 검은색은 다른 색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평범한 색일 수 있다고 결론내린다. 하지만 이때 검은색은 진짜 검은색이 아니다. 완전히 새까만 벨벳이라 해도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광자를 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랙은 하나의 색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완벽한 블랙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존 하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존재와 무를 오가는 검은색의 역사를 추적한다. 국내에도 출간된 ‘블랙 패션의 문화사’를 낸 세계적 검은색 연구가인 그는 보다 더 완벽한 검은색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했다.

검은색 역사의 시작은 인간의 기원, 세상의 기원, 이와 상징적으로 연결된 신화·종교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검은색에서 탄생했다. ‘신이 빛이 있으라’ 하기 전까지 태초에 짙은 어둠만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원초적 어둠은 여러 신화에 동시에 등장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검은색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색깔 이전에 공포, 두려움, 죽음 같은 감정과 감각으로 존재한다. 인류가 검은색을 빛이 없는 어둠과 밤의 공포로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은색은 동시에 신성과 고귀함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실제로 청동기 말 아프리카산 검은 목재는 귀한 품목이었고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검은 머리카락은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눈처럼 하얀 피부, 새빨간 입술, 흑단처럼 검은 머릿결로 서술된다.

하비는 이렇게 종교와 신화에서 시작한 뒤 패션, 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검은색의 역사를 추적한다. 빛에 대한 고대 철학자들의 관찰, 15세기 왕권의 상징, 20세기 코코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에 사용된 세련미는 물론 슬픔, 광기, 멜랑콜리의 상징으로서의 검은색을 탐색한다. 유럽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과정에서 어떻게 검은색의 부정적 연상을 활용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당연히 카라바조, 터너, 로스코 등 수많은 화가와 디자이너들이 검은색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도 설명한다. 따라서 검은색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또한 어둠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된 검은색은 한동안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존재의 상징이었지만 결국 인류가 이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검은색의 역사는 인류가 공포와 무지에서 벗어나는 역사, 인류가 공포를 점령해간 역사이기도 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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