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혜가 묻는 바람에 서동수는 씹던 것을 서둘러 삼켰다. 평양 모란봉식당 안, 오후 7시 반, 서미혜가 관저에는 들어오기 싫다고 해서 둘은 여기서 저녁을 먹는 중이다.
“왜? 그런 소문이 났어?”
“소문은 오래전부터 떠돌았지요.”
서미혜가 맑은 눈을 치켜뜨더니 서동수를 흘겨보았다.
“소문이 어디 한두 번인가? 중국 여자가 되었다가 러시아 여자, 중국 여자는 둘이나 되었지요. 참, 나.”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요?”
“딸 앞에서 여자 문제로 잔소리 듣는 것이 좀 창피하구나.”
“잔소리 아녜요, 아버지.”
젓가락을 내려놓은 서미혜가 지그시 서동수를 보았다. 28세. 6세 때 중국으로 데려와 형수인 박애영과 어머니가 키웠다. 시간이 그야말로 유수(流水)처럼 흘러 서미혜는 중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지금은 중국 동성 본사의 기획실 팀장이다. 서동수와 한 달에 한두 번쯤 전화 연락을 하고 1년에 두 번 정도 이렇게 만나 식사를 하는지도 몇 년 되었다. 서미혜를 키운 것은 7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지금 칭다오에서 함께 살고 있는 형 서민수 부부다. 사촌들과 함께 자랐다고 해도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버지는 만날 자리를 비우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도 중심을 잡으셔야 할 때가 되었어요. 다 알고 계시겠지만.”
“알겠다.”
“그리고 저, 결혼 내년쯤 하겠어요.”
“그, 중국놈이냐?”
“중국놈이 뭐예요?”
“한국놈, 일본놈, 미국놈, 다 그렇지. 중국만 중국님이라고 해?”
“그건 그렇지만요.”
착한 서미혜가 배시시 웃었다. 서미혜는 동성 베이징 사업본부 부장으로 근무하는 제임스 위라는 한족과 교제 중이다. 30세, 미국 예일대 경영학 박사 출신이며 한국어도 유창하다고 했다. 서미혜가 말을 이었다.
“아이 넷만 낳기로 했어요. 아들 둘, 딸 둘, 이렇게요.”
“너무 많지 않냐?”
“애들이 커서 중국, 한국, 한랜드, 이렇게 나누어서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걔들 집 찾아다니면서 여생을 보내는 거죠.”
“40년쯤 후를 생각하는 거냐?”
“그래요.”
“그때 대륙이 어떻게 되어 있을 것 같으냐? 네 생각을 말해봐라.”
“유럽은 몰라도 아시아, 러시아, 그리고 일본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대제국으로요.”
“대제국이라…….”
“인도나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제외하고요.”
서미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서동수를 보았다.
“아버지, 그런 분위기가 보이지 않으세요? 저는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라 이름은?”
“코리아.”
바로 대답한 서미혜가 말을 이었다.
“이런 꿈이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신선한 공기처럼요.”
“그렇지, 그러려면 자식 넷은 있어야겠다. 네 계획이 적당하다.”
서동수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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