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제임스 김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 ② 전쟁의 역사와 ‘4월 위기설’
화염과 폭격으로 얼룩진 중동, 최근 4월 위기설과 함께 긴장감이 고조되는 동북아시아.
미국의 항모전단이 한반도로 접근할 것이라는 섣부른 보도로 인해 지난 10일 한국의 주식시장은 장중 2030선이 무너졌고, 4월 들어 외국인 순매도 금액이 이날 기준으로 3534억 원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핵문제에 대해 내내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역시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물론 이러한 수사들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위기설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증폭되었던 것이다. 결국 칼빈슨호의 북상이 당초 예상보다 늦었던 것으로 판명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1. 줄어든 전쟁, 그러나 늘어난 분쟁
놀랍게도, 현대에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전쟁 발생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전쟁과 관련된 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는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전쟁 상관성 데이터(Correlates of War·COW)가 있다. COW 데이터는 먼저 전쟁을 다른 민족 간에 벌어지는 군사적 갈등으로, 적어도 1년에 1000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사건으로 규정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19세기에만 해도 국가 간 전쟁이 117건이나 발생했지만 20세기에는 63건에 그쳤다.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을 기준으로 하면 전쟁 발생률에 있어 더욱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816년부터 1949년까지 133년 동안 발생했던 전쟁 수는 총 161건으로, 매해 1건 이상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1950년 이후 데이터가 기록하고 있는 2010년까지는 총 37건의 전쟁을 겪었다. 즉, 60년 동안 어림잡아 평균 1년에 0.62건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가 보여주듯이 20세기 들어서 특히 2차세계대전 이후,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줄었다고 해서 이전보다 평화로워진 세상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줄었지만, 한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내전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내전과 관련된 COW 데이터를 살펴보면, 19세기에는 총 122건이었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서는 294건으로 늘어나며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기준으로 보자면 1818년부터 1949년까지의 131년의 기간 동안에는 205건, 1950년 이후로는 237건이었다. 1년 평균 내전 발생률로 따지자면 19세기 초부터 2차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1년에 약 1.6건, 그 이후에는 3.9건의 내전이 발생했었고, 이는 2.5배 정도 높은 수치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은 아니지만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듀크대의 국제분쟁데이터(International Crisis Behavior·ICB)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0년간 국제적 분쟁은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요약하자면, 국가 간 직접적 충돌과 전쟁은 2차대전 이후 줄어들고 있지만, 내전이나 분쟁은 증가일로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2. 민주주의의 확산이 전쟁 줄였다
내전이 발생하는 국가는 대체로 소득이나 경제 성장률이 낮은 국가,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산업발전이 더딘 것으로 나타난다. 저성장과 빈곤은 정치적 불안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내전 발발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주변국의 정치상황 또한 내전 발발 여부와 관련이 있는데, 권위주의 정권이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와 접해 있는 경우 내전의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내전 중 한쪽 세력이 불리해지는 경우, 이들이 이웃국가들로 피신하며 내전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즉 내전은 전염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수민족이 많은 국가일수록 내전 가능성이 높다. 한 소수민족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 이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책을 견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소수민족의 요구는 종종 묵살당하기 쉽고,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은 소수민족들은 무력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 지역에 내전과 분쟁이 빈발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왜 줄어들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늘 서슬 퍼런 긴장상태에 있었던 냉전시대에는 소련과 미국 간의 힘의 균형을 통해 평화를 유지했다. 물론, 여러 차례 두 강대국의 대리전쟁(proxy war)들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복잡한 세력균형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전쟁의 횟수는 드물었다. 또한 냉전 기간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이 주도했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여러 국제기구들과 다국적 협력 체제를 국제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다.
국제정치학자인 로버트 코헤인에 의하면 1910년까지만 해도 정부들 사이의 협의된 국제 조직은 고작 30개에 지나지 않았다. 1940년에는 70개로 늘었고, 1981년에는 1000개가 넘었다. 국제협회연합(UIA)의 2015년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3만7000개가 넘는 다양한 국제협회가 활동 중이다. 특히 의미 있는 기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설립되었다. 많은 국가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분쟁을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창구를 갖게 되었고,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쟁범죄와 이에 대한 처벌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설립은 전쟁의 법적 규제를 마련한 것인 동시에, 분쟁의 불씨를 어느 정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창구를 제공한다는 데에 의의를 가진다.
전쟁이 2차세계대전 이후 줄어든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민주주의의 확산을 들 수 있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 뿌리를 둔 ‘민주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에 의하면 민주주의 정부는 다른 형태의 정부보다 전쟁에 민감하다. 국민의 지지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주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전쟁을 치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전쟁이라 하더라도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로 인해 정부와 집권 여당은 정치적인 지지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발전된 국가들은 전쟁을 피하는 경향이 있고, 설사 전쟁에 참여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 때에만 참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의 피해와 승리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있어 계산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 가능한 권위주의 국가에 비해 민주정부는 전쟁에 훨씬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1945년 민주주의 국가는 전 세계 19개국에 지나지 않았지만, 2010년에는 87개국으로 증가했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는 1945년 19개 국가로 출발해 1977년 82개국으로 정점을 찍고 이후 계속 추락하여 2010년에는 22개국으로 줄었다. 민주주의의 활성화는 현대 국제사회의 전쟁 발생률을 낮추는 데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3. 중국의 부상 속 동북아 안보 우려
6·25전쟁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된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큰 전쟁은 없었다.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 및 지역안보 상황은 다른 분쟁지역들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60년간 유지돼 왔던 안보균형이 최근 세 가지 중요한 변화로 인해 흐트러졌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경제 발전을 통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함께 키워오며 동남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해 왔다. 지난 60년간 유지되었던 강대국들 사이의 힘의 역학구조가 재편되면서 한반도 혹은 역내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둘째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도발이 발생할 수도 있고, 이것이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적 조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정치인들(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하여)은 그들의 생살 여탈권을 쥐고 있는 미국 국민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마리스트폴(Marist Poll)의 올해 4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 사이에서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69%)이 군사력을 사용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23%)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대응 방식이 미덥지 않고 불안하다는 의견이 56%로, 믿음이 간다는 의견인 39%보다 훨씬 높았다(CBS Poll, 4월 7∼9일). 대체로 미국인은 한·미 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북핵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는 크게 공감해 왔지만, 한반도 전쟁 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서는 양분된 모습을 보여 왔다.
4. 트럼프시대 북·미 신경전, 어디로?
퓨 리서치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47%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인 49%보다 조금 낮았다. 되돌아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대선 공약도 세계의 경찰노릇을 그만두고 미국만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주장은 수많은 미국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냈었다. 정치적으로 계산을 해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면전환의 기회를 주었던 단발성 시리아 폭격과 달리,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얻어낼 것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상대는 핵개발을 하고 있는 북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선정국, 북한과 미국 간의 계속적인 신경전,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북한 압박 등으로 인해 동북아 내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같은 중차대한 결정에는 여러 토론과 계산의 과정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계산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는 중국과 미국이 상호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억제력과 국내 정치적 환경이 있다. 군축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의 조사에 의하면 지금 중국은 약 2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은 6800개 정도를 가지고 있다. 핵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은 100개 정도의 핵무기만으로도 지구의 대기권을 위험한 농도의 방사능으로 채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의 의견 수렴 없이 독자적으로 선제타격을 통해 전쟁의 위험을 무릅쓸 정당성은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에만 안심하고 기대서는 물론 안 될 것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의 책임과 의무는 전쟁을 포함한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4월 5일자 24면 1 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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