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논설위원
하이브리드전이란 정규전과 비정규전 그리고 사이버전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쟁 개념이다. 또, 그 수행 주체가 국가를 넘어 반군(叛軍), 테러단, 심지어 범죄집단까지 확대된다는 점에서 기존 전쟁과 구별된다.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배합된 전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개 정규전 부대와 비정규전 부대가 분리돼 있었으며, 이들의 작전을 병행한 ‘복합전(compound war)’이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전은 정규전 부대와 비정규전 부대가 분리되지 않은 채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함께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다.
서구의 하이브리드전 개념은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경험에서 도출됐다. 정규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과거의 게릴라전과도 다른 형태의 전쟁, 그리고 군사작전보다는 정치적 지지 동원과 국제 여론 영향력 행사에 더 큰 방점이 찍힌 전쟁 형태를 개념화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선 ‘게라시모프 독트린’이라 불리는 ‘선전포고 없이 정치·경제·정보 및 기타 다른 비군사적 조치를 현지 주민의 항의 잠재력과 결합시킨 비대칭적 군사행동 개념’이 별도로 발전해 왔다. 이 명칭은 2013년에 이 개념을 정리해서 발표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게라시모프 독트린의 맹아적 행태는 2007년 4월 에스토니아 사이버 전쟁에서 첫선을 보였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수도 탈린에서 소련군 동상을 철거하려 하자, 에스토니아 국민의 약 30%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정국이 혼란해졌다. 바로 이를 틈타 러시아가 ‘애국 해커’를 동원, 에스토니아 인터넷망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나토(NATO)는 이 사건을 계기로 ‘탈린 매뉴얼’이란 사이버전 교전수칙을 만들었다.
그 후 2008년 8월 러시아·조지아 전쟁에선 정규전과 사이버전이 배합된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과 그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동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분리주의 반군과 위장 침투한 러시아 정보·특수전 요원에 의한 정규전 및 비정규전, 그리고 여기에 정치·정보·심리전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완성된 형태가 나타났다. 그밖에 러시아계 주민들이 몰도바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도 낮은 강도의 하이브리드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 하이브리드전 개념에서 핵(核)은 주요 전제 조건이다. 핵은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개입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기존 개념으론 전쟁이 발발한 것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한 하이브리드전에서 핵으로 무장한 러시아에 맞서 정면 개입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전의 경우 상대방의 인터넷망을 교란·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 그리고 해킹을 통한 정보 탈취 못지않게 거짓 정보 유포 등을 통한 정치 선동 및 심리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따라서 군만이 아니라 정보기관도 전투 행위 주요 주체일 수밖에 없으며, 정보심리전을 위한 정치 이념과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 2003년 이라크전을 통해 첨단기술을 통한 ‘군사 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의 위력을 과시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하이브리드 전쟁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문제는 한반도다. 북한이 하이브리드전 개념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핵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종북세력과 결합한 사이버 정치 심리전을 통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다면, 한국군이 자랑하는 최신식 재래식 무기는 별로 쓸모없게 될 수도 있다. 여기다 하이브리드전에서 주요 역할을 해야 할 정보기관마저 무력화된다면 상황은 더욱 불리해진다. 이는 머지않아 현실로 닥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을 보면 이런 인식 조차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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