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성 정치권의 몰락! 2017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다. 전통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가 나란히 결선투표 진출에 실패했다. 1958년 5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출범한 지 만 1년밖에 안 된,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단체에 가까운 ‘전진’(EM)의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예선 1, 2위를 차지해 오는 5월 7일 본선에서 맞붙는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도 80%를 웃돌 정도로 높았다. 민심의 바로미터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심은 공화당과 사회당을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다.

왜 그랬는가? 사회당의 무능, 공화당의 부패 때문이었다. 5년 전 대선에서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나 올랑드 집권 이후 프랑스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5년간 경제는 악화 일로였고, 잇단 테러에 시달렸으며, 유럽 통합의 주도권도 상실했다.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멈출 줄 몰랐고, 치안은 불안해졌으며, 독일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무능의 극치를 보인 사회당에 등을 돌린 민심은 싸늘했다. 이번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는 6.36%의 득표율로 5위에 그쳤다. 무능에 대한 유권자의 철저한 응징이었다.

사회당 정부의 총체적 실정은 중도우파 공화당의 반사이익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정설이었다.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대통령은 거의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피용은 가족을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허위 취업시켜 거액의 급여를 받도록 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고 만다. 지지율은 급전직하하고, 공화당은 급히 대안을 찾았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경쟁자였던 알랭 쥐페 전 총리와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부패의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패 스캔들로 얼룩진 우파 후보에 대해 프랑스 국민은 밀가루 세례와 함께 결선투표 진출 실패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기성 정치권이 무능과 부패로 민심을 잃은 사이, 프랑스 대선은 정치적 아웃사이더들의 대결장이 됐다. 선출직 공무원 경험도 하원 의석(議席)도 전무한 39세의 중도 성향 마크롱 후보, 하원 의석 1석뿐이면서 거침없이 반(反)EU·반이민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의 이단아 르펜 후보가 그들이다. 다행히 프랑스에는 결선투표제가 있어 극단적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이기긴 지극히 어렵다. 결선에서는 중도 좌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이 표를 결집해 극단적 정치세력에 대항하는 전략적 투표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런 안전장치 덕에 중도파 마크롱 후보가 큰 표 차이로 극우파 르펜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 초년생 마크롱이 위기의 프랑스를 구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6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의회 안정 의석을 확보한다면 정치 개혁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무능한 정권,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환멸은 프랑스만의 얘기가 아니다. 안보 위협, 청년실업, 경기 침체 등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도전도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면적인 정치개혁이 절실한 이때, 능력과 품격과 비전을 갖춘 노련한 기성 정치인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국민을 매료시키는 믿음직한 패기의 정치 신예도 보이지 않는다. 토론 방송은 볼수록 감동과 기대는커녕 실망과 우려만 더 커진다. 누가 대한민국을 구할 것인가. 어려운 시기, 든든한 지도자를 갖지 못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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