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역사학자 알랭 코르뱅(81)이 ‘침묵의 예술’(북라이프)을 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현대 문명에선 침묵의 그윽함과 흥취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의 저작 ‘악취와 수선화’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영향을 줬듯이 코르뱅은 특히 인간의 감각에 관심을 가진 미시사학자입니다. 이제까지 후각, 시각, 촉각 등에 대한 책을 쓴 그가 청각으로 관심을 옮겨왔습니다.
공간, 자연, 종교, 사랑, 죽음 등으로 나눠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와 예술가, 철학자, 종교인들이 침묵을 소재로 탄생시킨 작품들을 소개하며 침묵의 의미를 되짚어 갑니다. “우리는 침묵을 잊고 산다. 옛사람들은 침묵을 음미할 줄 알았다. 침묵은 묵상이나 몽상에 잠기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색하거나 기도하고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무엇보다도 말이 나오기 전에 명료하게 모습을 갖추는 내면의 장소였다.” 그래서 저자는 사랑도 말로 표현되지 않는 침묵까지 사랑할 때 진짜 사랑이라고, 침묵을 빼앗기면 사랑엔 아무 풍미도 향도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침묵은 말을 넘어선 내면이며 언어화되지 않는 혹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광활한 세계입니다. 빛보다는 어둠, 낮보다는 밤, 문명보다는 자연, 북적이는 군중보다는 고요한 존재, 도시보다는 떨어진 먼 곳에 가깝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볼 수 없듯 일상에서 사라진 것들이죠. 그래서 코르뱅은 침묵을 얻는 몇 가지 방법을 전합니다.
우선 자연이 있습니다. 그는 “숲이나 들판을 산책하면서 듣는 소리는 침묵과 같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전하며 자연이 만든 시간 자체에 특유의 침묵이 배어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계절은 앞선 계절의 침묵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긴 겨울이 침묵에 들어가야 그 침묵 속에서 봄이 오고 싹이 돋고 꽃이 핍니다. 자기만의 공간과 고독도 방법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에는 정돈된 집과 같은 위대한 침묵이 군림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현대인들 스스로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침묵의 공간에 홀로 되는 순간마저 머릿속엔 걱정과 생각의 와글거리는 소음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하나 더 제안하길, 미학적 탐색을 떠난 작가의 글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침묵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때 책은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달려가는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더 적절하다고 합니다. 침묵을 찾아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래 저래 책은 유용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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