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임기 첫날부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2위와의 격차가 확대된다고 해서 흔쾌한 승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대세력은 탄핵과 촛불을 대갚음하려 벼르고 있다. 패배가 자명한데도 후보 단일화가 난망한 것은, 1년 뒤 지방선거를 노리고 야당 선명성 경쟁에 나서겠다는 예고다. 이러니 연정이나 합당도 어렵다. 모든 정당이 과반에 한참 못 미치는 의석뿐인 데다, 국회선진화법까지 있으니 ‘약체 정권’은 숙명이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와 장관 인사청문회, 정부조직 개편부터 야당 손에 달렸다. 국무회의 정족수(15∼30명) 충족을 위해 현 장관(국무위원)들에게 머물러 달라고 부탁해야 할 판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도 공약했으니, 개헌 논의까지 겹친다. 안보·경제 난제는 몰아치는데 정국은 1년 이상 혼미를 거듭할 것이다.
이런 불길한 전망을 고려하면 다음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통합’이다. 그런데 구호만 요란할 뿐 실상은 정반대다. 중도 후보들은 위축되고, ‘적폐 대청소’ ‘좌파 대척결’식의 양극단이 세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수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분열과 몰락으로 좌우 균형이 무너지고, 국가의 정향(正向) 이탈도 막기 어렵게 됐다. 개표가 끝날 때까지 선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대세가 바뀔지는 의문이다. 좋든 싫든 이젠 대선 이후도 생각해야 할 때다.
43년 전 출간돼 기억조차 아득한 ‘전환시대의 논리’가 홀연히 나타났다. 지난 25일 TV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자서전 ‘운명’의 내용이라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영희 선생 책 ‘전환시대의 논리’를 인용해 미국 패배와 월남 패망은 진실의 승리이고, 희열을 느꼈다고 나와 있다. 우리 장병 5000명이 죽고, 공산주의가 승리한 건데 희열을 느꼈나?” 문 후보는 “베트남 전쟁 논문 3부작의 수미일관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라고 답했고, 토론 시간에 쫓겨 설전은 흐지부지 끝났다. 며칠 앞서 문 후보는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동아일보 24일 자 23면 톱기사). 문 후보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의식화’의 출발이었다고 했다. 그 책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혔으나 민주화와 경제 발전, 사회주의 붕괴를 거치며 실효성을 잃었다. 2006년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 역시 “전론(轉論)을 절판시켜도 아깝지 않은 때”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장황하게 짚어본 이유는, 문 후보가 ‘전환시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양산 자택 서재에도 이런 유(類)의 책이 많다. 최근 발언을 봐도 문 후보의 인식은 ‘노무현 시즌Ⅱ’로 비친다. 북한 인권 문제, 사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인식이 그렇다. 또 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 재벌, 복지, 정부 역할, 대기업·부자증세 등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노 정부 5년 동안 ‘코드 인사’라는 말이 신어자료집에 등록될 정도로 인사 왜곡이 심했다. ‘청와대 386’이 실세로 등장했고, 공공기관 감사 자리가 전리품으로 본격 등장한 것도 이때다. 대통령이 “미국 바짓가랑이” “북핵은 방어용” “동북아 균형자” “반미면 어떠냐”라고 하면서 한·미 동맹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석기 특별사면, 일심회 수사 중단 등 ‘종북’ 사례도 많다. 강남 집값은 폭등했고, 소득 불평등도 확대됐다. “그놈의 헌법” “군대 가서 썩는다”는 등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대통령 발언도 잇달았다.
문 후보는 준비된 후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 정부 때의 역할을 ‘준비’로 본다면 착각이다. 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정권을 넘기고 ‘폐족’을 자처해야 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문 후보가 이긴다면 본인 역량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자멸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만 미·일 등 세계의 보수 기조와 거꾸로 갈 수 있다. 문 후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탈(脫) 전환시대’다. 냉전이 한창일 때의 저작이 탈냉전과 세계화도 넘어 4차 산업혁명시대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생각, 그런 세력과 선을 그어야 한다. ‘자주’로 위장해 종북 행태를 보였던 사람들이 여전히 문 후보 주변에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같은 인사들도 있다. 이들부터 물리쳐야 한다. 문 후보가 선두지만 언제든 훅 갈 수 있다. 혹 대통령이 된다면 더 선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박 정부나 ‘노 정부 시즌Ⅰ’보다 더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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