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육청이 관내 308개 초등학교에서 내년부터 객관식 시험평가, 특히 선다형(選多型) 평가를 전면 폐지한다고 한다. 김석준 교육감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주입식, 암기식, 정답 고르기식 교육으로는 변화무쌍한 복합융합사회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면서 “생각하는 힘과 문제 해결 능력의 힘을 키우는 교육을 위해 초등 시험에서 객관식 문제를 없애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는 2학기에 부산교육청 관내 10개 학교를 선정해 객관식 시험 없는 시범학교를 운영하며, 또 이를 위해 시범학교에 교과별 성취 기준 중심의 다양한 서술·논술형 시험 문항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단편적인 정보의 암기를 조장하는 객관식 교육평가 문항은 이른바 실증주의를 내세우면서 문항의 객관도 구축을 위해 지난 50년간 우리 초·중등교육에 ‘군림’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뜻도 새기지 않고 평가를 위한 암기에 몰두하게 됐다. 시험 성적 잘 나오는 방식으로 외우고, 반복적인 문제 풀이에 매달려온 결과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은 것, 읽은 내용, 겪은 내용을 창의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을 등한시하게 됐다. 한편, 교사들도 수업지도안에서부터 수업에 관한 거의 모든 사안을 ‘객관성’을 담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교육 내용이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이번 결정에 대해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해 둔다.
첫째, 아이들의 주관을 길러내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도록 하려면, 배운 내용을 단순히 요약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학부모, 교육 당국 등 교육 주체의 기본적인 생각부터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둘째, 평가 방식을 주관식 문항 위주로 확대해가야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와 관련, 평가의 객관성 보장을 우려한다.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연장에서 단답형 문항을 적극 추천해야 한다고 하지만, 단답형 문항도 선다형과 마찬가지로 객관식 문항이다. 아이들이 답을 고르는 대신에 연필로 정해진 답을 직접 쓴다고 해서 주관식 문항이 아니다. 주관식 문항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주관이 담긴 내용을 가지고 답하는 문항이다. 논술 문항이나 프로젝트 제작을 요구하는 문항 등이 주관식 문항이다.
셋째, 단위학교와 일선 교사에게 자율적인 선택권과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즉, 이번처럼 교육감 주도로, 또는 교육청 주관으로 교육평가 정책을 끌고 가지 말고, 단위학교와 일선 교사에게 전권을 맡기라는 것이다. 환자에게 개복수술을 해야 할지, 물리치료를 해야 할지, 어떤 약을 투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처방’은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지역 보건 정책 당국자가 하는 게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평가 방식을 단위학교와 교사에게 일임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 그들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책무성을 강화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넷째, 부산교육청의 이번 시도가 단지 초등학교만 하다가 마는 반쪽짜리 땜질 정책이 되지 않도록 초등학교에 국한하지 말고, 중등학교로 확장해야 한다. 또, 교육감이 바뀌면 다시 철회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선다형인 수능시험에 발목 잡혀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선 안 된다. 차제에 수능시험의 존폐 자체를 아울러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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