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한창이던 1990년 10월. 한 소녀가 미국 하원 인권위원회에 등장했다. ‘나이라흐(Nayirah)’라는 이름을 가진 15세의 이 쿠웨이트 소녀는 눈물을 쏟으며 이라크군의 만행을 생생히 고발했다. “저는 지금 막 쿠웨이트를 빠져나왔습니다. 자원봉사하던 산부인과 병원에 이라크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난입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들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미숙아들을 꺼내 병원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버려진 갓난아이들은 죽어갔습니다. 미숙아인 제 조카도 이렇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이른바 ‘인큐베이터 학살 사건’이다.
소녀의 목격담이 전해지자 전 세계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 국민은 물론 상하원 의원들도 공분했다. 이라크 공격에 부정적이던 많은 의원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미 상원은 52 대 47로 이라크 공습을 승인했다. 유엔도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허용했다. 1991년 1월 ‘걸프전’은 그렇게 발발했다. 40여 일 만에 끝난 이 전쟁에서 이라크군과 민간인 20여만 명이 사망했다. 반면 다국적군은 300명의 전사자를 내는 데 그쳤다. 세계 전쟁사에 유례없는 일방 승리였다.
그러나 종전 1년 후 나이라흐의 증언은 완전 조작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시사잡지 ‘하퍼스 매거진’ 존 맥아더 기자의 집요한 취재에 의해서다. 그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 그녀는 미국 거주 중이었다. 그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적도 없다”고 폭로했다. 더욱이 그녀는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고, 한 홍보회사가 그녀에게 위증을 교사했다고도 했다. 쿠웨이트 정부가 홍보사를 이용해 반(反)이라크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은 이를 명분으로 전쟁 개입을 정당화했다는 결론이다. 이후 ‘나이라흐의 거짓 증언’은 세계 언론사에 남을 최악의 가짜뉴스로 꼽히게 된다.
‘깜깜이 유세’ 기간을 틈타 가짜뉴스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최근 넉 달간 대선 관련 가짜뉴스는 3만1746건에 달한다. 지난 대선 때 적발 건수의 4배가 넘는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19대 대선이 사상 최악의 ‘가짜뉴스 선거’로 기록될 게 확실하다. 가짜뉴스는 국가와 개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비열한 사회악이다. 이번만은 ‘나이라흐의 해악(害惡)’을 한 번쯤 곱씹어본 뒤 투표장으로 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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