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 정치부 부장

한국 역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답안은 19대 대통령 조기 선거가 치러지는 내일이면 나올 것이다. 새 아침을 거부할 수 없듯,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모아진 그 민의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우리는 분노와 슬픔, 격동과 혼란, 재정돈의 과정을 겪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고, 수의를 입고 감옥에 갇히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정치·사회적 지각 변동을 거쳤다. 돌이켜보면 촛불 집회는 태극기 집회의 반작용을 낳았다. 사회에서 한쪽으로 의지와 힘이 쏠리면, 다른 방향으로도 에너지가 분출한다. 대립이 폭력적이면 비극적 사태가 빚어진다. 법과 절차, 이성의 통제와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어쨌든 한국 사회는 위기의 순간을 넘겼고, 전 세계는 민주주의 후발국인 한국의 새로운 정치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결실의 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4월 30일 서울 신촌 유세에서 “집권하면 수사권을 가진 적폐청산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문 후보에게 적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서 박근혜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과정, 방위사업 납품 비리 의혹 등 부조리와 불합리, 비민주주의, 권위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영역의 낡은 관행을 망라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에서는 1960, 197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의 느낌이 어딘가 묻어난다. 당시 홍위병들은 낡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것에 대한 파괴에 앞장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다. 홍 후보는 7일 유세에서 종북세력, 전교조, 강성 귀족노조를 1년 안에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프랑스의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을 연상게 하는 공동통합정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좌우를 섞은 동거정부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북한핵 위협에 직면한 우리에게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정부 형태다.

5월 9일 투표소로 향하는 우리의 발길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급진주의와 이데올로기의 결합이다. 제대로 된 반성과 합의 없이 모든 것을 한 번에 갈아엎으려 한다면 분열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영국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성찰(1790년)’에서 의미심장한 독설을 퍼붓는다. “메뚜기 대여섯 마리가 성가시게 잘랑대는 소리로 들판을 가득 채우는 사이, 수 천마리 소 떼가 묵묵히 되새김질하면서 브리티시오크 나무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시끄러운 놈들이 들판의 유일한 거주자라고 상상하지 마십시오.”

들판은 바위가 깨져 흙이 되고, 씨앗이 자라 풀과 나무로 번성하고, 다시 낙엽이 쌓여 흙을 이루며 형성된다. 안에는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인간 의지가 있다. 또 조용하고도 도도한 변화의 흐름이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들판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우리의 아들과 딸도 살아가야 한다. 그 들판에서 생존은 이념보다 상위에 있는 절대가치다. 19대 대선은 진보는 스스로를 보수하고, 보수는 과거의 잘못을 딛고 진보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

jklee@
이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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