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 강원도 홍천 명동리
다른 사정으로 참가 못할 땐
배우자·자녀들 대신 팔 걷어
부모 모시고 땀흘리는 직원도
사내 봉사활동 넘어 가족행사
13년째 인연… ‘1사1촌 1호’
지난 4월 21일 류명호(49) 씨는 대한항공에 근무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다. 내일 중요한 업무가 생겨 사내 봉사활동에 나갈 수 없게 됐는데, 봉사활동을 가고 싶어 하는 딸 신정(11) 양과 함께 대신 참가해 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아내 회사에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류 씨는 기꺼이 하루 휴가를 냈고, 다음 날 딸과 함께 대한항공 봉사활동에 합류했다. 류 씨는 “딸이 평소에 봉사활동을 무척 가고 싶어 해서 소망을 저버리기 어려웠다”며 “본인이 아니라 가족만 참가해도 된다고 해 딸과 함께 오게 됐다”고 말했다.
13년째 강원 홍천군 남면 명동리 마을을 후원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1사 1촌 활동은 단순히 ‘사내 봉사활동’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날 와서 비닐하우스에서 잡초를 뽑고 고추 모 심는 일을 맡은 류 씨는 “쉽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다”며 “그래도 딸이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래 아이들과 떨어져 고추 모 심는 어른들 있는 곳에 혼자 배정받은 신정 양은 처음 해보는 고추 모 심기가 재미있는지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명동리 주민들은 “고추 모 심는 일이 어려운데 (류 씨가) 이날 있었던 많은 자원봉사 활동 중에 가장 힘든 일을 맡았다”며 “오늘 가장 고생한 자원봉사자”라며 치켜세웠다.
류 씨는 “나는 처음 뵙지만 아내를 아는 분들인 것 같아 더 조심스럽다”면서도 “아내를 위해 ‘외조’에 신경을 써야 하는 가장이 된 것 같아 약간은 서글프기도 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부모님과 함께 참가한 대한항공 사원 이한아(29) 씨의 경우 지난해 가을 봉사 때는 본인 사정으로 불참한 채 부모님만 참가했다. 이 씨와 부모님은 서로 다른 봉사활동을 하게 돼 점심 먹을 때가 돼서야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씨 가족들은 서로가 더 고생했다며 한나절의 봉사활동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이날 의무팀에 소속돼 엄마 박나리 씨의 일을 보조했던 김지우(11) 군도 엄마의 처방전 작성을 돕고 파스 등 의료용품을 나눠주는 데 열심이었다.
대한항공 1사 1촌은 직원뿐 아니라 퇴사한 직원들도 봉사활동에 나서 색다른 광경을 연출했다. 대한항공의 전직 여승무원 모임 카사(KASA)의 배정미(59) 씨는 그동안 10번이나 명동리를 찾았다.
“지금껏 제가 뵌 명동리 이장님만 네 분”이라는 배 씨는 갓 귀농한 주민보다도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이날 카사 회원들과 못자리에 흙을 담는 작업을 하던 배 씨는 오히려 주민들을 독려해 가며 활동을 주도했다.
명동리 주민들은 배 씨를 볼 때마다 “이젠 도사가 되셨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또 전 직원의 가족들까지 명동리를 찾고 있다. 이날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카사 회원 중 몇몇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홍천 지난번 그곳으로 오라”며 가족을 불러내기도 했다.
홍천 =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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