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한국 아가씨들! 반갑네. 오늘 비빔밥 주지요?”

유럽에서 출발하는 귀국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승 풍경이다. 한식당이 귀한 유럽 몇 개국을 장기간 여행하며 어르신들이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이 얼마나 그리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아 “그럼요. 맛있게 준비해 드릴게요”라며 그 장단에 맞추어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런가 하면, 참기름과 고추장을 쭉쭉 짜 넣고 김가루까지 뿌려 젓가락으로 야무지게 비벼 먹는 외국인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뉴욕 비행에서 만난 한 외국인 승객은 기내에서 처음으로 비빔밥을 접하고 매료돼 뉴욕 한식당을 종종 찾을 만큼 마니아가 되었다고 한다.

1997년 기내식으로 첫선을 보이자마자 그해 기내식의 영예인 ‘머큐리상’을 수상했던 대한항공의 비빔밥은 여전히 한결 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인기로 인해 때론 품절이 되어 승무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봄·여름·가을·겨울 절기마다 가장 맛있는 7가지 이상의 제철 나물이 선별되어 제공되니 영양 면에서도 단연 기내식 중 으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한항공에서는 비빔밥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먹는 방법이 설명된 안내 자료를 함께 제공하며 한식의 세계화에 공헌하기도 했다. 안내문 안의 사진과 설명을 보며 순서에 따라 고추장과 밥을 넣고 맛있게 비벼 먹는 외국 승객들을 보고 괜히 뿌듯해지는 걸 보면 나도 뼛속까지 한국인인가 보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 신선한 맛과 함께 계절과 지역,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울려 조화와 융합을 이루는 것이 비빔밥 정신이라고 한다. 일상적인 음식에도 의미를 담는 조상의 지혜가 무척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촌 작은 축소판인 기내에서 이만큼 잘 어울리는 음식이 있을까 싶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옆자리 승객과 피부 색깔도, 사용하는 언어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서로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야지만 쾌적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학창시절 점심을 먹고 매점으로 뛰어가서 사 먹던 아이스크림, 무더운 여름날 밤 한강 둔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먹던 치킨과 맥주, 어릴 때 살던 동네 그 골목 분식집에서 먹던 떡볶이와 뜨끈한 어묵국물…. 음식이 주는 행복은 소소하지만 참 소중하다. 귀국편 기내에서 매콤한 비빔밥과 미역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며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소탈한 미소를 건네던 노년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니, 비빔밥은 명실상부한 기내식의 스타이자 터줏대감이 분명하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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