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연 강수량 400㎜를 기준으로 유목과 농경 지역이 나뉜다. 목초가 말라가는 계절에 유목 민족은 농사를 지으며 먹을 것을 쌓아놓은 중원의 농경민을 습격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초원 민족은 1000년 이상 중원 민족에게 공포의 대상이면서 비하와 멸시를 당했다. 전국시대에 이들 초원 민족을 ‘흉노(匈奴)’라 부르기 시작했고, 진한 시기에는 더욱 강한 멸시의 의미를 넣어 ‘호(胡)’라 불렀다.
중국 민족사학 연구자이자 작가인 가오훙레이(高洪雷)가 쓴 이 책은 흉노를 비롯해 오환과 선비, 돌궐, 거란 등 현재 중국 국경 내에서 살았던 18개 옛 소수민족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胡’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과거뿐 아니라 현대 중국은 주변 소수민족을 무시하고 역사적으로 ‘지우는’ 작업에 몰두했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는 중원 왕조의 흥망성쇠만 기록하고 여러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아주 가끔 언급해왔다면서, 소수민족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주역(周易)을 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반쪽짜리 중국사를 온전하게 복원한다는 각오로 이 책을 지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한족을 제외한 55개의 민족으로, 책에서 다루는 소수민족은 이들의 기원이 되는 민족들이다. 중국의 고전을 비롯해 방대한 사료들을 토대로 소수민족의 기원을 밝히고, 잊고 있던 왕국의 역사를 재평가·재조명한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역사를 ‘절반’의 중국사로 본다는 시각에는 중국이라는 지리적 영역 안에 존재한 모든 왕조와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다. 흉노에 대해 “날쌔고 사나운 신체와 기동력 있는 전법을 갖춘 이들은 일세를 풍미할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궤멸과 융합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든지, 특히 위구르나 티베트 지역의 역사를 서술할 때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다.
책을 번역한 김선자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도 여기에 주목하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점이 책을 번역한 동기라고 말한다. 역사서는 ‘문자’를 소유한 강자들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객관성이 떨어지는 서술이나 저자의 시각을 교정하고 설명하는 데 무려 160페이지가 넘는 긴 역주(譯註)를 달아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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