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희 송파구청장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인문학 열풍은 2010년대 초반 빅데이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고, 사그라졌던 관심도 최근 4차 산업혁명 대두 이후 다시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인간을 이기는 최첨단 시대에 ‘왜 인문학인가’라는 질문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철학과 문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로봇을 만드는 일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문학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찾을 수 있다. 검색엔진으로 시작해 오프라인 세상을 점령해나가고 있는 구글을 비롯해 아마존과 페이스북 등은 자사의 가장 큰 경쟁력을 인문학이라고 답한다. 수많은 정보기술(IT)기업 속에서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라 남다른 인문학적 발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인문 고전이 빛을 발한다. 비록 중퇴하긴 했지만 IT 혁명의 정점에 섰던 스티브 잡스는 대학 시절 인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애플의 정체성을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으로 정의할 정도였다.

나 역시 인문학, 특히 인문 고전의 힘을 새삼 깨닫고 있다. 민선 5기 때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책 읽는 송파’ 사업을 통해 ‘하루 20분 한 달 2권’을 목표로 삼아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지금은 ‘송파’ 하면 ‘책 읽는 송파’가 떠오를 정도로 주민들도 가장 잘한 사업으로 손꼽아 칭찬해주고 적극 참여해 주신다. 나도 ‘책 읽는 송파’ 사업을 시작한 이후 틈이 날 때마다 독서에 몰두했고 그 끝에 인문 고전을 만났다.

이이가 선조의 제왕학을 위해 집필한 ‘성학집요’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를 만주 일대로 확장시킨 ‘발해고’는 한 번에 읽어 내려가긴 힘든 책이었지만 거듭해 읽을수록 “내가 똑똑해지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두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이런 경험을 주민들과 나누고자 2014년부터 ‘송파구 인문학 최고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을 수료한 주민들은 더 일찍 인문 고전을 접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모든 게 너무 느렸던 아인슈타인이 인문 고전 독서를 시작한 이후 역사에 남는 천재가 된 것처럼 인문학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다. 이에 올해는 어린이들이 인문 고전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 읽어주기 문화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어른이라고 해서 늦은 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30대 중반을 넘어서야 인문 고전 독서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 빈치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미술가, 기술자, 위대한 사상가로 남았다.

아이에게, 부모에게, 또 다른 가족에게 감사할 일이 많은 5월이다. 마음이 담긴 손편지와 함께 한 권의 인문 고전으로 감사함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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