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난감한 용어에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용어인 ‘당청(黨靑)관계’ ‘당정(黨政)관계’라는 용어 역시 그러하다. 여당과 청와대의 관계, 여당과 행정부의 관계를 지칭하는, 누구나 알기 쉬운 용어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가 난감한 이유는 우리가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다. 대통령제 아래서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의회 모두에 자신들을 ‘대의(代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의회는 입법기관으로서 각각 독립적인 권한을 갖고 상호 견제하면서 국정을 운영한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쪽의 상대적 권한이 강화되는 경우, 준(準)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정부제 등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유형의 변형된 대통령제가 출현한다.
사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치학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변형된 대통령제다. 형식적 제도와 기구의 측면에서 보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한 사례로 인용되는 미국식 대통령제와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순수한 대통령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와 관행이 지속돼 왔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제도가 한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부의 법안 발의권이다. 이는 영국과 같은 의회제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특히, 정부는 법안의 발의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국회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준수하고, 국회 내 위원회는 통과된 법안의 시행 과정에서 상시적으로 정부를 감독하는 과정을 거쳐 정부와 국회의 협치가 강조되는 의회제 국가의 성격이 드러나는 제도다.
우리 사회 내에서 ‘당청관계’라는 용어는 아마도 정부가 지닌 법안 발의권 때문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의 정책적 선호를 대의하기 위해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발전돼야 할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가 국회 내에서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로 변형됐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계 설정 아래서 국회는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대의기관으로서 더 이상 기능하기 어렵다. “그동안 국회는 청와대가 일방적 협조를 강요한다고 여겨왔고, 청와대는 국회가 합리적인 견제를 넘어서 불필요한 적대적 자세를 가진다고 여겨왔다”는 전병헌 신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발언이 이를 대변한다. 의회제 국가에서 집권 여당과 내각의 협조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당정관계’가 대통령제인 우리 사회에서 ‘당청관계’로까지 확대되면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16일 오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새 원내대표가 선출됨으로써 청와대와 국회는 새로운 견제와 균형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전 신임 정무수석이 발언한 ‘국청(國靑)관계’라는 신조어는 그동안 여야를 구분해 관계를 맺었던 관행에서 벗어나 새 정부의 청와대는 여야를 포괄하는 하나의 입법기구로서 국회를 대할 것임을 함의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국민 주권의 원리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충실히 지켜질 때 가능하다. 국회의 정부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정치개혁과, 그에 따른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신임 정무수석이 새로운 ‘국청관계’의 핫라인이 되겠다고 한 의지가 이러한 요구의 반영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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