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관련, ‘도발→제재·압박→잠시 도발 중단→협상→보상→고도화된 재도발’이란 악순환이 재현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16일 대북 대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그 내용도 형식도 원론적 대화 용의 표명보다 한 발 더 나갔기 때문이다. 헤일리 대사는 “핵 개발과 관련 실험의 전면 중단이 이뤄진다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말했는데, ‘북한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북·미 대화가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어감(語感)을 주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14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제재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나왔다는 모양새도 예사롭지 않다.

북·미 대화 발언 자체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가 그와 함께 만나는 것이 적절하다면 나는 전적으로, 영광스럽게 그것을 할 것”이라며,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난달 26일엔 미 외교·안보팀이 합동성명을 통해 “협상의 문이 열려 있다”고 했으며, 지난달 27일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등장으로 남북 대화론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올바른 여건’이란 단서를 붙였지만, 대화 신호가 점증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과 함께 가동이 중단된 판문점 연락사무소가 조만간 정상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화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전쟁 중인 적과도 대화하는 법이다. 그러나 대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때와 형식도 중요하다. 북한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4일 IRBM 도발에서 알 수 있듯이 위협을 더 강화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화의 전제 조건을 바꾸는 것은, 북한에 마냥 버티면 더 큰 보상을 받을 것이란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나아가 ‘북핵 완전 폐기’ 수순과 정반대로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시간과 비용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 양국은 다음 달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남·북 대화든, 북·미 대화든, 북핵 동결이 아닌 핵 폐기를 전제로 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지난 20여 년 북핵 협상의 실패사(史)를 돌아보면, 김정은 체제가 휘청거릴 정도의 압박이 가해진 다음에야 의미 있는 협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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