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1989년 개봉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교사가 남긴 이 한마디는 1990년대 ‘입시 지옥’에 고통받고 있던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줬다. 키팅 교사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어도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인성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국내에도 많다.
대구 운암중학교에서 수학을 담당하는 김기윤(30) 교사도 그중 한 명. 지난 2014년 부임해 이제 4년 차 ‘초짜 교사’지만, 김 교사가 부임한 이후 운암중 학생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김 교사 부임 이후 운암중은 점심시간이면 항상 ‘라이브 음악’이 울려 퍼지는 교정으로 바뀌었다. 김 교사가 이끄는 ‘버스킹 동아리’가 점심시간이면 교정 쉼터에서 아름다운 공연을 선보인 것. ‘버스킹’은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라는 버스크(busk)에서 유래된 말로, 거리에서 자유롭게 하는 공연을 말한다.
김 교사는 교사가 되기 전부터 이미 버스킹 동아리 결성을 꿈꿨다고 한다. 김 교사는 1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임용시험 준비를 하면서부터 꿈꿔왔던 학교의 모습이 바로 점심시간에 학교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며 “점심시간 및 방과 후에 운동장이나 벤치 여기저기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낭만적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이 부족하고 공교육이 위기에 직면한 지금, 음악은 학생들의 상처를 돌봐주고 지친 심신을 ‘힐링’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김 교사는 생각했다.
김 교사는 운암중에 오자마자 각 교실을 돌며 버스킹 동아리 창단 취지를 설명하고 참가 희망 학생들을 모집했다.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오디션을 보러 왔어요. 생각보다 높은 참가율에 놀랐죠. 오디션을 통해 노래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 기타와 멜로디언 등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아이들 20명을 선발했습니다.”
물론, 선발 학생 중에는 노래나 악기 다루는데 소질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변변한 동아리방도 없어 학교 밖 벤치 등에서 연습을 했다. 이렇다 할 장비도 없었다. 음악실에서 기타를 빌리고, 김 교사가 월급을 쪼개 중고 악기를 구매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땀 흘려 연습해 동아리 결성 석 달 만에 학교 쉼터에서 첫 버스킹을 했다. 반응이 좋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던 아이들이 곧 함께 어울리게 됐다.
아이들은 점차 공연을 늘려나갔다. 학교 지원과 학생들 호응도 이어지면서 자유학기제 우수사례로 교육부장관상도 받았다. 창의·인성교육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양한 공연이 축적되면서 이제는 모집 경쟁률이 6대 1 정도에 달할 만큼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동아리가 됐다. 인근 초등학교에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버스킹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 운암중을 선택한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아이 중 한 명이 허찬화(15) 양이다.
“초등학교 때 친한 선배 중에 이 동아리 회장이 있었어요. 선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이 동아리에 꼭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해 운암중에 입학했어요. 선생님은 학생들 가르치는 것만 해도 바쁘실 텐데 같이 공연 연습을 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도 더 생겨나고,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친한 선배 같은 느낌을 받아 정말 좋아요.”
허 양은 동아리 활동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교장 선생님에게 동아리방을 마련해 달라는 ‘민원 편지’를 써서 동아리방을 얻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동아리 아이들 중에는 소위 ‘문제아’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무조건 선발한다는 게 김 교사의 원칙이다. 비록 문제아지만 노래와 연주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인성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소위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칭찬을 해 줍니다. 동아리 활동 때문에 학교에 나온다는 아이도 있어요. 음악을 통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넘어 교사가 학생들에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즐거운 학교가 됐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운암중의 ‘존 키팅’ 선생님인 김 교사의 다음 꿈은 아이들과 함께 앨범을 내고 청와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전국의 아이들에게 음악과 희망을 전달해 주는 것이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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