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인공지능(AI), 유전자 조작, 초인류 등 과학이 몰고 올 미래에 대한 예측이 쏟아지는 시대에 인류의 미래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의 신작 ‘호모 데우스’를 권하겠다. 뇌과학, 유전자·생명공학, 기술공학 등이 인도할 미래를 전하는 책들, 특히 과학자들의 뛰어난 책들이 많지만 여러 분야에 걸친 지식을 촘촘하게 쌓아내는 인문학자, 그것도 강력한 이야기꾼이 펼쳐내는 독자 친화적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하라리는 이 책에서 첨단 과학 지식을 광범위하게 틀어쥔 채 인류 역사 전체를 무대로 우리들의 미래를 펼쳐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호모 사피엔스는 머지않은 미래에 마음을 잃어버린 슬픈 호모 데우스(Homo Deus), 즉 ‘신이 된 인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미래 세계를 지배할 종교는 데이터 교. 사람을 포함해 모든 것이 데이터로 연결되고, 데이터로 해석되며, 삶과 세상의 의미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빨리 흐르게 할 것인가로 귀착되는 믿음 체계다. 이때에 이르면 인간도 그저 유전자, 뇌의 전기 자극 같은 숱한 데이터 알고리즘의 결과물로 전락한다. 가치 있는 단독자가 아닐 뿐 아니라 다른 동물보다 우월할 것도 없는 존재가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20세기 이후 불멸, 행복, 신성을 획득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도구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해 호모 데우스에 이르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디스토피아적 전망이라면 완전히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익숙한 예측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 ‘호모 데우스’의 진짜 가치는 요약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책은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읽어야 한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최강자가 되는 시점부터 중세, 근대, 산업혁명, 자본주의·자유주의 체제를 거쳐 미래에 이르는 긴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의미, 자유의지, 마음, 영혼, 종교 등과 과학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를 변화시켜왔고 또 변화시킬지를 펼쳐내며 보여주는 통찰, 해석, 비틀어 보기를 함께 해야 한다. 독자들도 하라리의 인도를 받으며 알고 있던 지식의 조각조각들을 조합해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엮어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지금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은 300여 년 전부터, 길게는 호모 사피엔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인본주의’라고 했다. 인본주의라면 흔히 이성의 힘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에서 시작해 종교혁명, 과학혁명과 결합돼 산업혁명으로 이어진 역사물로 파악하지만 저자는 ‘인류에 대한 숭배’를 저 먼 인류의 기원으로까지 끌고 간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면서 네안데르탈인 등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가 그렇게 자부한 것이 아니라 인류 후손들이 그렇게 해석했다. 그 뒤 농업혁명으로 동물을 가둬 기르게 되면서 동물은 열등한 생명이 됐고, 그리스도교 등 일신교가 신성을 강조했지만 이 역시 신성과 인간의 타협이라고 했다. 이들 종교안에서 모든 것이 신의 뜻이지만, 인간은 신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 뒤 진화론이 등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성에 의탁하지 않고 인간이 직접 세상과 인간의 비밀을 풀어가게 됐다. 신을 넘어선 것이다.

인본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자유의지, 영혼, 감정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의 결정은 자유의지의 결과로 본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도 이 같은 개인에 대한 신뢰의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과학이 점차 인간의 신화를 벗겨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하라리는 진화론, 생명과학, 뇌과학의 결과로 볼 때 인간의 본질은 유전자이며, 인간의 의식이란 뇌의 전기 화학적 반응에 의해 생기고, 마음, 의식, 주관적 경험은 증명되지 못했으니 실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전제 위에 수십 년 내에, 데이터 교가 지배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호모 데우스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리고 이 같은 미래엔 재산, 권력, 기술 등을 통해 초인류가 된 이들과 보통의 인간으로 계급이 나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그 시대 권력은 누가 쥐는가. 기존의 권력자는 당연히 아니다. 이들은 이미 기술 진보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는 재산가도 아니다. 그들 역시 데이터를 이용해 자기 재산을 불릴 정도는 되지만 거대한 데이터 알고리즘을 장악할 순 없다. 저자가 예견한 권력은 데이터 자체다. 현재는 해커들이 알고리즘의 대부분을 만든다. 하지만 중요한 알고리즘은 구글 같은 거대한 팀이 개발한다. 구성원들은 퍼즐의 한 부분만 이해할 뿐이고 알고리즘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기계 학습과 인공 신경망이 부상하면서 점점 더 많은 알고리즘이 독립적으로 진화해 스스로 성능을 높이고 배워 나간다.

이런 알고리즘들은 어떤 인간도 못한 천문학적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 인식 방법을 습득한다. 종자 알고리즘은 인간이 만들지만, 이 알고리즘은 자기만의 길을 따라 인간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어떤 인간도 갈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비극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근거는 지식의 역설이다. 많이 알수록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예언이 아니라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에 대해 논의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논의로 인해 우리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내 예측이 빗나간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무엇하러 예측을 하겠는가.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했지만 그 역시 아직은 인간의 의지를 믿는 듯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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