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진화 / 웬다 트레바탄 지음, 박한선 옮김 / 에이도스

사춘기와 초경, 임신과 출산, 생리 전 증후군, 산후 우울증, 수유와 양육 그리고 폐경…. 생물 인류학자인 웬다 트레바탄 뉴멕시코대 교수는 여성이 일생 동안 겪는 몸의 변화와 건강을 인류학, 내분비학, 심리학, 의학, 진화생물학에서 나온 연구 성과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현대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가 ‘문명화에 따른 질병’이라는 주장. 구체적으로 짚어 들어가자면, 증가하는 유방암 발병률, 앞당겨지는 초경, 생리 전 혹은 폐경 증후군 등이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다른 영장류와는 다르게) 다듬어진 인간의 신체가 근 200여 년의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여성의 몸은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저자는 “여성의 몸이 번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진화했다”는 걸 전제로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이는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저자는 임신과 출산 등 (듣기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개념인) ‘번식’을 중심으로 여성의 몸을 다루면서도, 진화적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 문화적 가치와 기대까지 더해, 다각도에서 여성을 들여다본다.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같은 진화 의학적 지식을 통해 21세기 여성의 건강 증진을 모색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학술적이면서, 일상적이고 매우 유용하다. 그동안 알려진 여성의 몸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다시 말해 익숙했으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상식’들을 보충, 혹은 수정해 주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의 유산은 결함이 아니라 진화론적 방어이고, 흔히 알려진 ‘정상 생리 주기’ 등이 선진국의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을 모델로 한 편협한 ‘정상’이며, 지금 현대 의학이 말하는 여성들의 정상 호르몬 수치가 진화적 맥락에서 보면 비정상적으로 높아, 생식 기능 변이 수준 극단에 와 있다는 주장 등이다. 이 같은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책에 따르면 볼리비아에 사는 여성은 오직 3분의 1 정도만 흔히 교과서 속 정상 생리 주기라고 하는 26∼32일 사이의 주기를 보였는데, 이 경우 주기 규칙성에 성공 여부가 달린 피임약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 밖에, 책은 ‘여성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개념 도구들을 쉽게 풀어, 누구라도 여성의 몸과 생애, 그리고 건강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데 어렵지 않게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인류 진화의 결정적 사건인 ‘두 발 걷기’는 여성의 산도(産道)를 길고 휘어진 모양으로 바꿨는데, 이는 출산 시 단독 분만을 어렵게 만들었다. ‘부모-자식 갈등’의 개념도 흥미롭다. 여성은 출산의 주체로서 번식과 생존이라는 이해관계를 놓고 아이와 밀고 당기기를 한다는 거다. 이를 통해 초기 유산, 임신성 당뇨, 임신 중독, 입덧 등을 설명할 수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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