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시절 5월쯤으로 기억한다. 내 고향은 전북의 어느 시골로, 집에서 매일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가려고 우리 논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른 손바닥만 한 붕어 네다섯 마리가 흙 이랑을 넘어가려고 펄떡거리는 것이 보였다. 고무신을 벗고 논에 들어가 붕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논의 물꼬를 흙으로 막고, 책 보자기를 어망처럼 네 귀퉁이를 묶어 제일 큰 붕어를 향해 조심스럽게 보자기로 덮쳤다. 그러나 붕어가 재빨리 도망가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다시 흙 이랑으로 붕어를 몰고 가서 온몸으로 덮친 후 책보자기로 잡는 데 성공했다. 학교에 지각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한 마리만 잡고, 물꼬를 터서 나머지 붕어들은 놓아주었다.

붕어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에 논둑에 벗어 놓았던 고무신 한 짝이 물에 떠내려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논바닥에 가라앉았을 리도 없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수업 시간이 다 되어 더 이상 신발을 찾을 수도 없었다. 한 손에 붕어를, 다른 손에는 신발을 들고 마구 뛰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담임선생님이 교무실에 있는 사환에게 붕어를 맡겨놓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수업이 끝나 붕어를 찾아가려고 교무실을 기웃거렸지만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왔다. 방에서 한참을 자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깨웠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오셨으니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수업을 마친 후 선생님은 신발 가게에 가서 나에게 주기 위해 고무신 한 켤레를 사 들고 내가 맡겨 두었던 붕어를 물통에 넣어 십여 리 길을 걸어 우리 집에 오신 것이다. 내가 신발을 잃어버린 것은 내 잘못으로, 선생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도 고무신을 사 오신 것을 보고 나도 커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고재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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