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혁은 기본기가 탄탄한 배우였다. 전작인 ‘오만과 편견’,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비롯해 영화 ‘신의 한 수’와 tvN ‘로맨스가 필요해’, ‘응급남녀’ 등에서도 특유의 연기력을 뽐내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최진혁을 한 번도 안 쓴 이는 있어도, 한 번만 쓴 이는 없다’는 업계 평가는 일단 그와 협업해보면 또 다시 최진혁을 찾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터널’은 최진혁이 3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지상파 드라마를 비롯해 숱한 작품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굳이 OCN의 장르물을 선택했다. 전작인 ‘38사기동대’와 ‘보이스’가 OCN 역대 최고 기록을 썼던 터라 짊어진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자칫 ‘터널’이 실패로 끝난다면 그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소속사 지트리크리에이티브 관계자는 “최진혁이 오직 믿은 건 대본과 자신감”이라고 전했다. 신인 작가, 신인 PD의 작품이었지만 4부까지 대본을 읽어본 후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최진혁이 비슷한 시기 주인공으로 제안받은 한 지상파 드라마는 ‘터널’과 같은 시기 방송됐지만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조용히 막을 내렸다)
위기는 있었다. 당초 메가폰을 잡았던 ‘터널’의 감독이 중도 하차했다. 급히 신용휘 PD가 투입됐다. 유독 출연 분량이 많았던 최진혁은 새로운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초반 분량을 다시 찍었다. OCN 관계자는 “최진혁이 다른 배우들 보다 약 두 달 가량 먼저 투입돼 엄청난 촬영 분량을 소화했다”며 “감독이 교체되며 재촬영을 하게 됐을 때도 불만 한 번 토로하지 않고 묵묵히 제 몫을 다했다”고 귀띔했다.
최진혁이 맡은 박광호는 1980년대 형사다.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 몇몇 배우들이 CF와 외적인 면에 몰두하며 치장하는데 공을 들이는 반면, 최진혁은 촌스러운 형사를 연기하기 위해 아버지가 실제로 사용하던 소품을 뒤졌다. 현대로 온 후에도 옷을 많이 갈아입지 않았다. 비슷한 톤의 항공 점퍼와 셔츠로 대부분의 장면을 소화했다. 형사 역할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디테일한 설정이었다.
소속사 측은 “작품 밖 최진혁의 이미지보다는 작품 속 박광호에 집중하자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며 “시청자들도 최진혁의 그런 진심을 알아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터널’의 종방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최진혁은 자줏빛 슈트를 입고 맵시를 뽐냈다. 다소 파격적인 의상 선택에 그는 “박광호는 멋이라곤 모르는 친구라 이번 기회에 좀 눈에 띄게 입어보고 싶었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터널’에서 돋보인 최진혁의 또 다른 매력은 목소리다. 원래도 목소리 좋기로 유명한 그는 박광호의 진중한 모습부터 ‘김선재 바보 박광호 천재’와 같은 유치하지만 정겹게 장난을 거는 모습까지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며 캐릭터를 단단하게 구축했다. 시청자들은 ‘목소리 깡패’, ‘목진혁’ 등 그에게 다양한 수식어를 붙이며 응원했다. 웃음과 울음, 분노와 여유 사이에서 최진혁은 세밀한 감정 조절로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를 조율했다.
그의 차진 욕설도 인기를 견인했다. 연쇄살인범 목진우, 정호영 등을 향해 그는 거침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듣기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시청자들도 도무지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을 수 없는 장면에서 박광호가 가슴 속부터 솟구치는 분노를 담아 표출하는 욕설로 오히려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평했다.
‘터널’ 마지막회는 케이블, 위성, IPTV가 통합된 유료플랫폼 가구 시청률은 전국 평균 6.490%, 수도권 평균 7.057%를 기록해 OCN 채널의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지난 14회가 이미 6%를 넘어서며 일찌감치 신기록을 작성했던 ‘터널’은 마지막회에서 다시 한번 이 기록을 깨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터널’이 OCN이라는 채널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대중은 ‘터널’을 통해 최진혁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됐다. “성장통을 많이 겪어서 더욱 의미가 깊은 드라마였다”며 “연기를 하면서 역량과 한계에 부딪혀서 괴로운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을 이겨낼 수 있게끔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겸손하게 소감을 밝힌 최진혁은 분명 ‘터널’의, 2017년 방송가의 최대 수확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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