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감독이 생각하는 ‘대표팀’
백지선(50) 남자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은 동양계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 진출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1세 때 캐나다 토론토로 옮겨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익혔다. 프로 진출의 준비 단계인 메이저 주니어 하키 리그를 거쳐 1985년 NHL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펭귄스에 9라운드로 지명됐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듯이 백 감독 역시 NHL 하부리그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1988∼1989시즌에는 머스키건 럼버잭스 소속으로 인터내셔널하키리그(IHL) 우승을 경험했다. NHL에 합류한 것은 1990∼1991시즌 중반. 백 감독의 NHL 데뷔전 기억은 생생하다. 그는 “뉴욕 아일랜더스와 데뷔전을 치렀는데, 긴장한 나머지 스틱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1990∼1991시즌과 1991∼1992시즌 피츠버그 소속으로 NHL 우승 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들어 올렸다. 백 감독은 NHL 첫 골을 1990∼1991시즌 스탠리컵 결승전에서 뽑았다. 6차전에서 아이스하키 최고 선수 중 1명으로 꼽히는 마리오 르뮤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 그는 1990∼1991시즌 캐나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48경기에 출전했다. 1993∼1994시즌 LA 킹스로 트레이드됐고 1994∼1995시즌에는 오타와 세너터스에서 활약했다. 수비수였던 백 감독은 NHL에서 통산 217경기에 출전해 34포인트(5골, 29어시스트)를 남겼다. 이후 NHL 하부리그와 영국리그 등에서 2003년까지 활동했다. 하키 명예의 전당에는 백 감독이 피츠버그 시절 입었던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
그는 은퇴 후 고교에서 코치로 후학을 양성했고 2005년 NHL 마이너리그인 아메리칸하키리그(AHL)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에 코치로 부임했다. 2014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때까지 햇수로 10년 동안 그랜드래피즈 코치를 맡았다. 백 감독은 2012∼2013시즌 그랜드래피즈가 최초로 AHL에서 플레이오프 우승을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선수, 코치 시절을 모두 합쳐 스탠리컵 2회, IHL 우승 2회 등 모두 6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대표팀을 ‘가족’ ‘퍼즐’에 비유한다. 가족처럼 서로를 굳게 믿고 하나가 돼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모양이 각기 다른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듯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전체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백 감독은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한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이하 감독, 코치, 지원 스태프가 모두 한마음이 됐기에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진출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백 감독은 “정 회장은 최상의 지원으로 대표팀을 보살피는 훌륭한 리더”라고 귀띔했다. 박용수 코치 등 코칭스태프는 백 감독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재미교포로 NHL 출신인 박 코치는 백 감독의 요청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수비수 출신인 백 감독에게 공격수 출신 박 코치는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좋은 참모다. 전술 등을 논의하면서 백 감독과 박 코치가 가끔 다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하게 의견이 대립할 때도 있다. 백 감독은 “코칭스태프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며 “그래야 내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NHL 트레이닝을 제안한 것도 박 코치였다.
수비수 출신인 김우재 코치는 백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현역 시절 안양 한라 주장을 5년간 지냈던 김 코치는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다. 골리 파트는 손호성 코치가 담당한다. 지난해부터 대표팀에 합류한 김성수 비디오 분석관 역시 대표팀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재미교포 출신인 김 분석관이 합류하면서 백 감독은 영상 자료를 훈련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외에 팀 매니저, 장비 매니저, 트레이너, 팀 닥터도 각자의 자리에서 대표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백 감독은 “장비 매니저, 팀 닥터 등은 선수들 뒷바라지에 밤을 새우기도 했다”며 “훌륭한 지원 덕분에 선수들이 훈련과 경기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
백지선(50) 남자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은 동양계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 진출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1세 때 캐나다 토론토로 옮겨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익혔다. 프로 진출의 준비 단계인 메이저 주니어 하키 리그를 거쳐 1985년 NHL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펭귄스에 9라운드로 지명됐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듯이 백 감독 역시 NHL 하부리그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1988∼1989시즌에는 머스키건 럼버잭스 소속으로 인터내셔널하키리그(IHL) 우승을 경험했다. NHL에 합류한 것은 1990∼1991시즌 중반. 백 감독의 NHL 데뷔전 기억은 생생하다. 그는 “뉴욕 아일랜더스와 데뷔전을 치렀는데, 긴장한 나머지 스틱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1990∼1991시즌과 1991∼1992시즌 피츠버그 소속으로 NHL 우승 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들어 올렸다. 백 감독은 NHL 첫 골을 1990∼1991시즌 스탠리컵 결승전에서 뽑았다. 6차전에서 아이스하키 최고 선수 중 1명으로 꼽히는 마리오 르뮤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 그는 1990∼1991시즌 캐나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48경기에 출전했다. 1993∼1994시즌 LA 킹스로 트레이드됐고 1994∼1995시즌에는 오타와 세너터스에서 활약했다. 수비수였던 백 감독은 NHL에서 통산 217경기에 출전해 34포인트(5골, 29어시스트)를 남겼다. 이후 NHL 하부리그와 영국리그 등에서 2003년까지 활동했다. 하키 명예의 전당에는 백 감독이 피츠버그 시절 입었던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
그는 은퇴 후 고교에서 코치로 후학을 양성했고 2005년 NHL 마이너리그인 아메리칸하키리그(AHL)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에 코치로 부임했다. 2014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때까지 햇수로 10년 동안 그랜드래피즈 코치를 맡았다. 백 감독은 2012∼2013시즌 그랜드래피즈가 최초로 AHL에서 플레이오프 우승을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선수, 코치 시절을 모두 합쳐 스탠리컵 2회, IHL 우승 2회 등 모두 6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대표팀을 ‘가족’ ‘퍼즐’에 비유한다. 가족처럼 서로를 굳게 믿고 하나가 돼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모양이 각기 다른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듯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전체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백 감독은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한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이하 감독, 코치, 지원 스태프가 모두 한마음이 됐기에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진출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백 감독은 “정 회장은 최상의 지원으로 대표팀을 보살피는 훌륭한 리더”라고 귀띔했다. 박용수 코치 등 코칭스태프는 백 감독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재미교포로 NHL 출신인 박 코치는 백 감독의 요청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수비수 출신인 백 감독에게 공격수 출신 박 코치는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좋은 참모다. 전술 등을 논의하면서 백 감독과 박 코치가 가끔 다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하게 의견이 대립할 때도 있다. 백 감독은 “코칭스태프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며 “그래야 내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NHL 트레이닝을 제안한 것도 박 코치였다.
수비수 출신인 김우재 코치는 백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현역 시절 안양 한라 주장을 5년간 지냈던 김 코치는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다. 골리 파트는 손호성 코치가 담당한다. 지난해부터 대표팀에 합류한 김성수 비디오 분석관 역시 대표팀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재미교포 출신인 김 분석관이 합류하면서 백 감독은 영상 자료를 훈련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외에 팀 매니저, 장비 매니저, 트레이너, 팀 닥터도 각자의 자리에서 대표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백 감독은 “장비 매니저, 팀 닥터 등은 선수들 뒷바라지에 밤을 새우기도 했다”며 “훌륭한 지원 덕분에 선수들이 훈련과 경기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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