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일이 서동수를 방문했을 때는 오후 3시다. 연방 정부도 평양에 있었기 때문에 서동수와 김동일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집무실로 들어선 김동일을 서동수가 맞았다. 서동수는 비서실장 유병선과 안보특보 안종관을 대기시켰고 김동일은 비서실장 박경수를 대동했다. 인사를 마친 양측이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김동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국 측의 ‘역사연구’에 대해서 중국이 민간 차원의 반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동일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일부 과격한 사이트는 ‘전쟁’을 선포한 경우도 있습니다. ‘역사전쟁’이죠.”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대한민국 정부도 정부 차원의 대응을 일절 하지 않기로 남북한 당국에 지시했던 것이다.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도 역사연구 자료를 읽어보았는데 신라, 백제, 고구려가 중국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자료를 모아 보고했을 것이다.

“나도 읽을수록 사실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민간에서 정부가 왜 가만있느냐고 항의를 해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늘 그것을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지금은 중국과 역사 마찰을 일으킬 시기가 아니라고 무마해야 합니다.”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다.

“중국과 경제공동체로 동반성장을 하는 시기니까요.”

남한 정부에서도 민간단체의 제의가 많아서 연방 정부에 문의를 해오는 실정인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김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한반도까지 중국령으로 역사에 편입하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역전이 됐습니다. 실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하긴 그래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남한에 있을 때 아무리 1500년 전이었다고 해도 5부(部) 5방(方)으로 거대했던 백제 사비성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데다 신라의 왕성인 동경이 한때 17만8938호, 1360동리가 있던 100만의 대도시였던 것이 지금은 손바닥만 한 땅에 왕릉 몇 개만 남아 있는 지경 아닙니까? 그 당시에도 납득이 가지 않았지요.”

그때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안종관이 말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역사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임나일본부가 지금의 산둥(山東)반도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설(說)을 내놓고 있는데 민간 사이트지만 순식간에 회원 수가 200만 명이 넘었습니다.”

“나, 참.”

쓴웃음을 지은 김동일이 서동수에게 말했다.

“이제는 다시 한·일 동맹이군요.”

“두고 봐야지요. 백제가 일본열도를 지배했다는 사이트가 기세를 올리면 그때는 또 달라지겠지요.”

“역시 역사는 힘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김동일이 서동수를 보았다.

“힘이 없는 자는 역사에서 밀려나고요.”

“그렇지.”

서동수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한때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남쪽은 또 동서와 좌우, 노소(老少)로 분열됐을 때 역사는 실종됐다. 남이 쓴 역사, 치우친 역사가 청소년들에게 하늘에서 쏟아진 페인트 물감처럼 덮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역사를 주도하고 있다. 보라, 1500년 전 역사도 끄집어내 바로잡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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