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재정계획수립TF’를 구성해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재원 조달 대책은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 장밋빛 청사진만 남발했던 과거 정치권의 행태에 비해 정책과 예산을 함께 고민한다는 점에서 책임감 있는, 진일보한 접근이다. 그동안 많은 오피니언 리더가 제기해온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새 정부의 태도는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
사실 현재 국회의 정책결정 과정에는 재정이 수반되는 법안에 대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재정 소요를 파악하는 장치가 잘 작동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프로그램에 필요한 재정 문제는 뒷전인 채 눈앞에 보이는 정치적 이익만 추구해 포퓰리즘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제는 새로운 정부 프로그램에 대해 재정계획을 구성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 납세자들의 이해를 얻어야만 정책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합리적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과거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 미국에서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거버넌스 개선의 계기로 삼은 예가 있다. 의회예산법을 도입해 닉슨 대통령의 개인적인 잘못을 시정하는 데서 나아가, 예산 과정에서 대통령과 의회 권한의 균형을 제도화하고,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검토하도록 하는 재정 책임성을 확립했다. 우리나라도 전대미문의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정책과 재정 거버넌스의 선진화를 이뤄낸다면 불행한 사태에서 사회적 학습으로 사회를 발전시킨 좋은 예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정위에 다음 4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그간 선거 과정에서 다소 미흡했던 공약 및 국정과제의 재정 소요를 이제는 최대한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점검해야 한다. 편익을 뻥튀기한다든지, 재정 소요를 과소 추계한다든지 하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고 정직하게 납세자들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합리적인 재정 소요 분석에 따라 국정과제들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냉철하게 재평가하고, 불가피하게 포기해야 하는 정책은 내려놓고 솔직하게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게 낫다.
셋째, 국정위와 함께 국가재정위원회도 만들어서 재정 마련에 대한 숙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경제활동의 어느 부문에서 증세를 해야 할지, 자산보유세인지 거래세인지, 개인 및 법인 소득세인지 소비세인지, 직접세인지 간접세인지, 생산활동에 대한 조세인지 비생산적인 활동에 대한 죄악세인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바란다.
넷째, 재정을 고려한 합리적인 정책 설계를 제도화하고 정책결정 과정에 필수적인 절차로 도입함으로써 정책 과정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정부입법 및 의원입법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에 대한 비용 추계를 의무화하고 전문가들에 의한 검증을 제도화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비용까지 고려하도록 하고, 대규모 새로운 재정 소요에 대해서는 재원 확보 방안도 함께 입법하도록 하는 페이고 제도(PAYGO)의 도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정계획 수립은 사실 개헌(改憲)보다 이해관계 충돌이 더 심한 영역이다. 이는 내 호주머니와 직결된 돈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정계획 수립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용기 있는 정치지도력을 국민은 갈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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