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한국인의 국민서사이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날의 모습.  자료사진
시험은 한국인의 국민서사이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날의 모습. 자료사진
시험국민의 탄생 / 이경숙 지음 / 푸른역사

시험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할 말이 있다.

시험에 울고 웃었던 일, 성취와 좌절, 실패와 기쁨의 기억….

학교 안에서건 밖에서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시험을 피할 길 없다. 교육, 평가, 자격, 성공의 수단이자 목표 자체인 시험.

전적으로 개인이 감내해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매우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공통의 경험.

그런 점에서 시험은 한국인의 국민 서사이다.

무대는 개인의 내밀한 내면부터 학교, 가족, 사회, 글로벌 세계까지 뻗어가고 등장 인물은 많고도 다양하다.

이런 시험의 서사는 다시 국민의 DNA가 되어 우리 스스로 마치 자유의지인 듯 ‘시험 국민’으로 살게 한다.

결과는 때론 노력이 보상받고 역경을 이겨낸 미담이기도 하고, 자녀 시험에 모든 것을 거는 전투적 교육 가족, 성적을 비관한 자살과 성적 때문에 아이가 엄마를 살해하는 끔찍한 비극 서사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시험에 집착하는가. ‘일제시대 시험의 사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육학자인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를 보는 것은 실은 반성의 작업이다. 우리의 시험이 어떻게 시작돼 어떻게 전개돼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펴봄으로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의 방향을 바꿔보자는 시도이다.

‘한국인 시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라는 평가에 부족함이 없는 책은 시험으로 좁혀본 미시사이며, 시험이 어떻게 사회와 사람들을 바꿔 놓았는지를 살핀 풍속사이자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사회 과학서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누구나 한국인의 시험의 역사를 따라가며 그 속에서 시험에 울고 웃는 자신의 역사를 발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마음을 저격하는 역사 책이라 하겠다.

사람에 대한 평가라면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지만 책은 시험 역사의 출발을 고려 광종이 과거 시험을 선언한 시점으로 잡는다.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뽑기 위해 개인에 대한 평가를 공식적으로, 그것도 지필 시험으로 시작한 과거 제도 말이다. 문벌 귀족에겐 폭탄급 발언이었을 선언 이후 과거 시험은 천 년간 지속되며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사회 운영자가 돼야 한다는 동양의 정치 이상과 통치권자의 통치 행위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됐다.

저자는 조선시대, 식민지시대, 해방과 한국전쟁, 현대 그리고 현재의 한국으로 이어지는 시간 흐름을 대략 유지하면서도 연대기 순이 아니라 과거제도, 영어 붐, 지능시험, 토플과 글로벌 시험, 성적 일람표와 배치표, 학력별 임금 격차, 고시 열풍, 자격증 시험, 능력주의와 서열주의 등 주제·이슈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 뒤에 붙은 참고 문헌 목록만 16페이지, 각주는 32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많은 자료를 조사해 빽빽하게 풀어놓은 세세한 사실들이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과거 시험의 풍속도를 보면 지금 대입만 못지않다. 장원 급제자들의 평균 연령은 조선 전기에는 29.2세, 후기에는 36.9세. 성균관에서 배우는 주요 9개 과목 평균 독파 기간은 3년 7개월이었다. 누군가는 합격을 위해 성균관에서 20년 세월을 보냈고 어떤 이는 시험 부정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나기도 했다. 합격해도 끝이 아니고 자녀의 합격까지 애를 끓여야 했다.

부정 행위도 만만찮다. 붓 대롱이나 도포 자락 속에 커닝 종이를 숨기고 속이 뚫린 대나무 통을 이용해 시험장 바깥에서 몰래 답안지를 전달받는 부정행위도 있었다. 시관을 특정 유파로 구성하거나 채점할 때 응시자를 확인하는 등 온갖 부정이 저질러졌다고 하니 지금 못지않은 과열 경쟁이었던 듯하다. 책에는 이 같은 시험과 관련된 역사적 팩트들이 촘촘하다.

시험에 대해서라면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한쪽은 시험이 계층의 사다리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그래도 평등하다는 입장이고, 다른 의견은 사람의 능력은 인위적으로 평가할 수 없고, 결국 평가자에 의해 장악되기에 불공평하다는 시선이다. 요즘 사람들이 이런 이중의 시선, 시험으로 인한 폐해를 모르지 않지만 누가 문제를 출제하고 누가 합격하며 왜 그런 문제를 내는지 등 공정성 따위를 묻는 것은 합격의 길로 가는 데 불필요한 시간 낭비이다. 그런 건 시험 이후에나 따져 봐야겠다 싶지만 일단 합격한 뒤에는 시험 기득권자가 되어 시험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니 저자는 이제 ‘시험의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시험과 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평가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심미적 기호부터 도덕적 판단까지 우리들은 끊임없이 대상을 보고 듣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평가가 정당하고 공정한가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전인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인공지능 시대를 앞두고 지금의 평가 기준이 미래에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게다가 시험은 능력주의를 내세우지만 능력주의를 가장한 서열주의가 되기 쉽고, 결과적으로 개인은 능력주의 신화 아래 무한대의 노력을 강요당한다. 강요당하는지도 모른 채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런 시험이라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인간 정신을 파괴한다.

이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험의 문제는 그 자체의 내재적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작동시키는 시험의 바깥, 바로 사회 제도라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험과 교육 문제는 절대 교육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는 일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등급화하는 방식 자체와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저자는 의대·법대 같은 인기학과를 추첨으로 선발하는 네덜란드를 예로 들고, 공시생 5만 명 시대에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들이 누구나 공무원 경험을 해볼 수 있게 한다거나 성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를 제안한다. 제안보다는 꿈꾼다는 표현이 더 맞는, 지금 현실에선 아득해 보이는 이상이다. 결국 역사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여기까지 온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길 없는 길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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