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잔을 내민 오동호가 말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던가?”
“웃기는 소리.”
잔을 받은 김영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변할 거 없다. 다 똑같다.”
칭다오(靑島)의 공업단지 안에 위치한 한식당은 한산하다. 오후 6시 반, 오동호와 김영태는 낙지볶음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중이다. 술 한 모금을 삼킨 김영태가 잔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야반도주해야 할 것 같다.”
“아이고.”
한숨을 쉰 오동호가 받은 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시선을 내린 채 물었다.
“애들 임금은?”
“안 밀렸어. 임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급했으니까. 지난달까지 다 줬어.”
“젠장.”
“미안하지, 애들한테.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죽겠다.”
“어디로 갈래?”
“내가 이 꼴로 한국에 어떻게 돌아가?”
“그럼?”
그때 술을 삼킨 김영태가 머리를 들고 오동호를 보았다.
“한랜드.”
“젠장, 개나 소나 다 한랜드구먼. 거기 가면 무슨 수가 나냐?”
“가서 알아봐야지.”
잠깐 식탁에 정적이 덮였다. 둘이 칭다오에 온 지는 25년쯤 되었다. 둘 다 섬유무역으로 기반을 잡았던 사업가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한때 ‘한국인의 날’까지 만들어놓고 온갖 특혜를 베풀어주던 시 정부가 달라진 것을 말하면 바보가 된다. 영리한 사업가는 함께 달라지는 법이다. 둘 다 중동 오더를 받아 중국에서 생산해서 수출해온 수출업자였는데 요즘 김영태 회사가 어려워졌다. 오더 양이 줄어들면서 자금 회전이 어려워진 것이다. 적자가 나더라도 오더 양이 많으면 공장 운영은 된다. 그러다가 흑자 오더로 메울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영태가 머리를 들고 오동호를 보았다.
“내가 튀면 공장 기계, 임차료, 집 임차료까지 합하면 은행 대출금에다 원부자재 대금, 직원 임금까지 정산이 될 거다. 아마 몇백만 원 남을 거야.”
“다 계산해놨어?”
“응, 여기.”
김영태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두드려 보였다. 가슴에서 종이 소리가 났다.
“젠장, 벌써 다 정리해놓았구먼.”
“정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계산만 해서 적어 놓았으니까.”
“집 살림은?”
“다 놓고 가야지. 옷가지만 트렁크 3개에 담아 놓았어.”
“벌써?”
“이 서류를 공장장 이기철한테 넘기고 가면 돼.”
“이기철은 아직 모르나?”
“몰라. 그놈도 믿을 수가 없어서.”
“…….”
“내가 간다면 잡을지도 몰라. 제 놈이 뒤집어쓸까 봐서 말이야.”
이기철은 조선족으로 10년 가깝게 공장장으로 데리고 있었던 사내다. 친동생처럼 지내던 사이인데도 그렇다. 그때 김영태가 길게 숨을 뱉었다.
“남은 게 25년간 겪었던 추억뿐이구나. 다 잃고 떠난다.”
오동호가 잠자코 술잔만 보았다. 김영태는 57세, 칭다오에 온 지 10년 만에 서울에 두고 온 와이프와 이혼했다. 와이프가 남매를 키우기로 했기 때문에 혼자다. 그런데 다 잃은 뒤 가는 곳이 고향이 아니라 한랜드라니, 타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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