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 대립 심했던 선조시대
남북갈등 지속되는 현재와 유사
서자로서 세자 책봉, 폐위까지
드라마틱한 삶, 형상화에 제격
다양한 해석 가능한 광해 통해
역사 읽는 각양각색 시각 제공
과거 역사속 해석‘폭군’과 달리
영상속 광해 ‘爲民리더십’ 부각
‘대립군’선 왕의 성장 과정 집중
그렇다면 대중은 광해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배우 이병헌 혹은 차승원, 드라마 마니아라면 이상윤이나 서인국의 얼굴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MBC ‘화정’과 ‘불의 여신 정이’, KBS 2TV ‘왕의 얼굴’ 등에서 각각 광해를 연기한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31일 개봉되는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에서 광해 역을 맡은 배우 여진구가 추가된다.
왜 이토록 광해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다뤄질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극적인 삶
광해는 서자였다. 그래서 세자 책봉 문제로도 갈등을 빚었으나 임진왜란이란 국난 속에 피란지인 평양에서 선조가 세자로 명한다. 평안도와 황해도 등의 민심을 수습하는 분조(分朝)의 임무를 맡기기 위함이었지만, 사실상 전쟁통에 사지로 내몬 것이란 역사적 평가가 많다. 그리고 어린 광해가 분조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바로 ‘대립군’이다.
결과적으로 광해는 분조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그로 인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반대파의 견제가 계속됐기 때문에 광해는 항상 정쟁 속에 살았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과 능창군을 죽이고 계모인 인목대비까지 폐위시켜 폭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듯 광해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살해 위협에 시달린 광해를 대신해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인물을 내세웠다는 내용을 다룬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가 탄생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현재와 닮은 시대상
광해는 과거에 살았지만, 그를 부활시키는 건 현재다. 그렇다면 왜 광해의 삶이 재조명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광해가 살았던 시대는 불안했다. 아래에선 왜의 침략이 있었고 위에서는 명나라가 ‘신하 된 도리’를 다하라고 압박했다. 내부 갈등도 심했다.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는 가운데 소수파였던 대북파가 대권을 쥐며 순식간에 야당이 돼버린 서인과 남인의 견제는 심해졌다.
이는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지는 지금의 모습과 꽤 닮았다. 각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위안부 문제를 놓고 딴지를 거는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미국은 연일 대북제재와 연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탄핵 정국을 거쳐 새 대통령을 맞은 대한민국의 정치판도 화합보다는 대립이 앞서는 모양새다.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영화는 과거를 통해 현대를 조명하는데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을 타파할 만한 방법을 과거에서 찾는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며 “세종과 같은 일반적 성군이 아니라 광해처럼 해석이 분분한 인물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역사를 읽는 하나의 물길을 제시한 셈”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리더를 원하는 시대적 갈증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한 정서는 ‘리더십의 부재’다. 영화 ‘명량’이 이순신의 리더십을 화두로 삼으며 1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광해를 다룬 작품의 공통점은 위민(爲民)정책을 편 광해를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광해가 시행한 대표적인 정책인 대동법은 공물을 쌀로 통일해 바치게 한 납세제도로 양반의 의무를 민초에게 전가하는 폐단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양반들이 기술하는 역사서 속 광해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했다는 해석도 있다.
기존 영화와 드라마가 왕이 된 광해에 초점을 맞췄다면 ‘대립군’은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어린 광해가 걸어온 길에 집중한다. ‘광해 프리퀄’ 혹은 ‘광해 비긴스’라 불릴 만하다.
연출을 맡은 정윤철 감독은 “리더십이 실종돼 모든 국민이 힘들어하던 시기에 이 영화를 기획했다”며 “어린 세자가 대립군이라는 백성들과 고난을 겪으면서 새로운 리더로 성장해 나간다는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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