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의대생, 어느날 어머니 실종
꿈속 20년뒤 자신 만나 엄마 찾아
아직도 규명되지 못한 꿈의 세계
특유의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6·사진)는 한국인이 유난히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다. 육체와 정신적 세계를 오가는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에 죽음과 미래, 신과 우주처럼 아직은 인간 능력 밖의 대상들을 이성과 과학이라는 기초 위에 그럴 듯하게 버무린 솜씨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제3인류’(6권)의 완간을 기념해 7번째로 방한했을 즈음, 교보문고가 조사한 판매량 집계에 따르면 베르베르는 최근 10년간 한국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작가별 누적 판매량이 가장 많은 소설가였다.
오죽했으면 베르베르는 당시 “내 작품이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공감대를 얻는 것 같다”며 한국을 ‘제2의 조국’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번역·출간된 장편 ‘잠’(2권·열린책들)은 당시 인터뷰에서 차기작으로 언급했던 작품이다. 2013년 국내에 3부작으로 나왔던 ‘제3인류’ 이후로 4년 만의 신작이다.
역시 소재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잠은 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인간이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메커니즘은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된 게 없다.
베르베르는 잠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에 근거해 자신의 장기인 과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다.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며 잠의 비밀을 파헤친다.
주인공 자크 클라인은 28세의 의대생이다. 어려서는 물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아이였으나 저명한 신경생리학자인 어머니 카롤린의 도움으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극복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남모를 상처를 가지고 있다. 11세 때 항해사이던 아버지를 끔찍한 해상 사고로 잃었고, 밤마다 정신병적 몽유병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어엿한 의대생으로 성장한 자크는 어머니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돌연 실종된다. 카롤린은 오랫동안 수면에 관해 연구해왔다. 수면의 5번째 단계인 ‘역설수면’을 넘어 비밀의 6단계로 가기 위해 실험하는 중이었다.
카롤린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자크는 꿈속에서 20년 뒤의 자신(48세의 자크)을 만난다. 48세의 자크는 꿈속 시간 승강기인 ‘아톤’을 이용해 20대 자크의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카롤린이 말레이시아로 갔으며 위험에 빠졌으니 빨리 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믿을 수 없었던 자크는 2번째로 같은 꿈을 꾼 뒤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말레이시아로 떠난다. 언뜻 들으면 이야기는 다소 허황된 측면이 있다. 꿈을 통해 학습하고, 꿈으로 치료하며, 급기야 꿈을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한다는 설정이 과장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베르베르의 힘은 여기에 있다. 그는 만화적인 상상에 과학적 연구 성과를 빈틈없이 배치해 개연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예를 들면, 수면의 6단계는 1937년 신경생리학자 너새니얼 클라이트먼이 평균 90분에 걸쳐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수면의 4단계를 발견하고 1959년 미셸 주베가 클라이트먼의 연구를 보완해 5단계로 정립한 것에 상상력을 덧붙인 것이다.
베르베르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의의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책은 1980년대 내가 과학전문 기자 시절에 썼던 자각몽에 관한 르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시작된 불면증, 프랑스 2채널 TV의 프로그램 출연, ‘클라인의 병’(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4차원 입체)도 빼놓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낸다. 현실이 믿음이라면 꿈은 일체의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잠의 세계는 우리가 탐험해야 할 신대륙이고, 캐내서 쓸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평행세계”라고 강조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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