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洑)의 생명은 물이다. 물이 없으면 보가 아니다. 논밭에 물을 끌어대기 위해 둑을 쌓아 흘러가는 하천의 물을 잡아 두는 곳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는 뭇 생명체들의 젖줄이다. 보 안팎의 수서생물을 보듬어 키우는가 하면 논밭의 작물들을 배양하고 그 농산물을 먹거리 삼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낸다. 그런 만큼 보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하다. 봇물이 흘러넘치면 조용하지만, 가뭄에 보가 바닥을 드러내면 주민들은 살벌해진다. 선의의 경쟁자 이웃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원수지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 봇물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저수지나 보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었다. 산이 많고 들이 좁은 지형을 활용한 농법이다. 태종 18년(1418년) 광주(廣州) 목사의 상소문은 이러한 실상을 잘 보여준다. ‘매년 음력 9월 얼음이 얼기 전에 보와 하천 둑을 더 쌓아서 얼음과 눈 녹은 물을 가두었다가 이듬해 봄 논밭에 끌어다 쓰라고 해 주십시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1935년엔 남북을 통틀어 9만514개의 보가 있었다. 여기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몽리(蒙利) 면적은 전체의 절반가량인 51만2000㏊나 됐다.
하지만 일제의 산미(産米)증산운동과 해방 후의 미곡증산정책에 따라 하천 상류 대부분이 저수지로 바뀌었다. 또, 기존 소규모 보도 크게 만들었다. 그 결과 1995년 말에는 1만8425개로 줄고 몽리 면적도 10만9000여㏊로 줄었다. 오늘에는 대형 댐과 저수지 또는 현대식 콘크리트 보가 축조돼 용수를 공급한다. 경지정리까지 돼 농사 짓기는 편해졌지만, 재래식 보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도 있다. ‘보싸움’이다. 계곡 위·아래에 각각 보를 쌓은 뒤 위쪽 봇둑을 터뜨려 아래쪽 보를 무너뜨리는 놀이이다. 아래쪽 보가 무너지면 위쪽 팀이, 안 무너지면 아래 팀이 이긴다. 대개 공수(攻守)를 바꿔가며 몇 판을 겨뤄 승부를 가린다.
봄 가뭄에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모내기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조 발생 우려가 큰 4대강 보를 6월 1일부터 개방한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의 감사까지 예고된 상태다. 이전 정부의 흔적 지우기 아닌가 우려하는 시선들도 있다. 정치판을 보면서 공격과 수비를 바꿔가며 싸우던 아이들의 보싸움 놀이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보싸움 놀이를 즐긴 아이들은 라이벌 관계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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