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북한이 연거푸 미사일 도발을 해대니 그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무력(武力) 과시다, 새 정부 의지 시험이다, 협상용이다 등은 으레 나오는 말이지만, 빅데이터식으로 분석해 보면,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도발을 일삼아 왔다. 협상에 나설 때는 결국 군사 제재를 피하거나 시간과 자금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25년 동안 5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차례의 미사일 발사 도발을 지켜만 보면서 여기까지 온 상황이라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초당적 대북정책을 위해 보수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북한 핵실험을 한목소리로 규탄한 게 초당적 대북정책은 아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이견은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것인가, 핵을 한국에 쏠 것인가, 대북(對北) 지원이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것인가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다. 북핵(北核) 해결이란 알고리즘에서도 최악과 최선, 평균의 경우들은 각기 다른 과정과 해법을 필요로 한다. ‘설마’로 표현되는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음을 보수와 소통해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일정 반경 이내의 조류를 무조건 살처분해야 국민이 안심하듯이 1%의 가능성이라도 최악의 경우를 초래할 수 있다면 완벽히 대비하는 게 위기관리의 철칙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냉전 시기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했던 핵탄두는 모두 합쳐 7만 기가 넘고 지금도 1만3800여 기의 탄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서로를 확실하고 완전하게 파괴하기에 넘치고도 남는 양이다. 그래서 핵무기는 선제공격을 받을 경우 보복할 수 있다는 보험용일 뿐 실제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란 게 핵전략 이론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미 핵실험도 했는데 왜 하필 써 먹지도 못할 핵무기에 매달리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이미 쏟아부은 돈과 시간(sunken cost)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관성을 따라 더 잃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개미투자자들의 주식 투자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북핵 포기나 도발 중지를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설정하는 건 북한과 대화를 않겠단 얘기와 마찬가지다. 일단 대화를 재개해야 포기를 설득할 수도, 핵이 없어도 안전할 수 있음을 협상할 수 있다. 북핵을 인수·합병(M&A)하거나 아예 사버릴 수도 없으니 수년에 걸친 협상을 각오해야 한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내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는 북핵 협상에서 교과서 같은 목표였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의 핵 협상을 진행하며 가장 역점을 뒀던 것은 CVID가 아닌 브레이크아웃 타임이었다. 협상 타결 후 이란이 불만을 품고 다시 핵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핵무기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이 기간을 최소 1년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무던히 애를 썼었다. 이미 핵실험을 5차례나 한 북한에 대해 어떻게 이 개념을 적용할 것인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며칠 전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더는 아닌 것 같다”며 “유럽의 운명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방문 기간에 유럽의 나토(NATO) 분담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행을 위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자 작심하고 한 발언이다. 사실상 유럽의 리더로서 대미(對美)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핵 문제도 이제 미국이나 중국 등 다른 누군가에 의지할 때는 지난 것 같다. 햇볕정책이나 압박정책이나 완벽한 해답이 아님을 지난 20년간의 실험으로 알게 됐다. 퍼주기 논란과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이란 비난도 초래했다. 이젠 미국의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는 데도 돈이 들지 모른다. 안으로는 보수, 밖으로는 4강국(强國)과 소통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궁극적으로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됨을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 때마다 한·미의 대북정책이 바뀌어온 걸 지켜본 북한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통 대통령’의 글로벌 소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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