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를 통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21일 만에 국회 동의를 얻어 이낙연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등 조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에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4명을 서둘러 장관에 지명한 것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낳는다.
우선, 바로 다음 날 이 총리의 임명동의안이 상정돼 국회를 통과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헌법상 총리의 내각 제청권을 무시하고 서두른 이유를 모르겠다. 절차적 민주성에 대한 시비를 무릅쓰면서 하루를 앞당길 필요가 있었을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역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이 국무총리라는 내각제적 요소를 갖고 있고 현행 국회법 제29조가 의원의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겸직을 허용하고 있어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원형인 미국은 애초에 의원의 장관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와 유사한 대통령제를 가진 프랑스도 의원이 장관에 임명되면 의원으로서의 직무를 정지시킴으로써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각제인 영국도 장관인 의원은 법률발의권이 제한된다. 그런데 우리는 장관을 겸직한 의원의 모든 권한이 그대로 유지된다. 선진국 중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면서 의원으로서의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의원의 장관 겸직은 정치적 꼼수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전문가를 장관으로 모시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의원들을 장관으로 기용하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쉽다는 게 상식처럼 됐다. 실제 2005년 장관직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의원 출신은 단 한 명도 낙마한 사람이 없다. 국회의원들이 그만큼 청렴하고 윤리적이어서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다운 계약서 작성, 자녀 2중 국적과 병역 기피, 탈세 등 비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일까?
장관 겸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꼼수가 되기도 한다. 김부겸(행자), 도종환(문화), 김현미(국토), 김영춘(해양) 의원의 지명은 집권 여당과의 관계, 탕평 인사, 무엇보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 차출할 의원들에 대한 스펙 만들기가 종합된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는 전문성과 지역 안배를 고려했다지만, 전공과 경력은 물론 관련 상임위 활동 한 번 안 해 본 인사를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전문성이 높단다. 임명 목적이 다르니 개인의 능력과 소양, 전문성, 리더십 등 장관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장관을 겸직한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거나 숙원(宿願) 사업을 해결할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공정한 경쟁인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행정 각부의 수장을 맡게 됨으로써 실제 자신이 대표해야 할 지역구나 직역의 이익이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이 모든 문제는 의원의 장관 겸직이 가능한 데서 비롯된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법 제29조를 스스로 개정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의원을 하면서 스펙도 쌓아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는 비단길을 스스로 없애겠는가? 장관을 하고 싶으면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적어도 겸직하는 기간에는 의원으로서의 권한을 정지시켜야 한다. 적폐 청산 의지가 강한 문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장관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적폐도 청산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