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사람들을 어떻게 악(惡)으로 포섭하고 불의의 하수인으로 부렸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30년 전 그 시대를 돌이켜봄으로써 2017년 6월 현재의 반면교사로 삼고, 앞으로 30년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뿌리 깊은 나무’(2008), ‘바람의 화원’(2011) 등 인기 드라마의 원작 소설로 잘 알려진 이정명(52·사진)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으로 돌아왔다. 2013년 ‘천국의 소년’ 출간 이후 4년 만이다.
책은 1987년 6월 항쟁을 소재로, 평범한 사람들과 그 대척점에 있는 감시자들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연극 연출자, 배우 등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뇌와 갈등, 최후의 선택을 담고 있다.
이 작가는 “1984년 9월 벌어진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부 변용을 거쳤지만 1980년대의 분위기를 지금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애썼다”면서 “기존에 80년대 소재 작품이 많은데 대체로 운동권 내부의 시각에서 다뤄진 게 많았다고 생각한다. 운동권과 적대적 시점, 운동권 밖의 평범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그 시대의 가치를 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5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 최민석과 그를 쫓는 공작원 김기준, 젊은 연극 연출가 이태주와 그의 연인이자 배우 김진아, 그리고 모든 공작의 배후에 있는 ‘관리관’ 등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이 나열돼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은 결국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떠받치고 있다. 시점과 선택은 제각각이어도 이야기가 지향하는 곳은 같다.
이 작가는 “음악에 푸가(기악합주곡)란 게 있다. 서로 다른 악기이지만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악곡을 말한다. 소설 구성에서 푸가 형식을 떠올렸다. 마치 ‘모래시계’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다가 또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갈라지는 그림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제목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선한 이웃’에서 선하다는 것은 반어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가는 “선악의 기준을 그 사람의 의도로 판단할 것인가, 행위로 볼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한 결과”며 “아무리 악해도 선한 의지가 있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선은 행위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최근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012년 발표한 ‘별을 스치는 바람’이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11개국에 번역·출간됐으며 올해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프레미오 반카렐라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 발표는 오는 7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