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미 정상회담, 대북 정책,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을 둘러싼 각종 국제 현안과 해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미 정상회담, 대북 정책,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을 둘러싼 각종 국제 현안과 해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는 한·미 동맹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국내 문제가 아닌 국제 관계 속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국내 지지 세력만 보지 말고 국제적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진창수(56) 세종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한·일 관계 및 외교 문제 전문가다. 그는 2년 전부터 국가 외교와 안보, 통일 분야 등에 대한 현황 분석과 대안 개발 등을 해온 세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세종연구소는 1983년 북한의 미얀마 양곤 폭탄 테러 당시 순국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모금운동 과정에서 정·재계 인사들이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진 소장은 지난 5월 29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회의실과 4일 오후 추가 전화를 통해 가진 인터뷰에서 사드 갈등 해결 방안과 정부의 대북 정책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적 난제 해결을 위한 조언들을 쏟아냈다.

―국방부의 사드 보고 문제를 둘러싸고 국내외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사드는 한·미 동맹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국내 문제로 보고 접근하기보다는 국제관계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와 관련한 진상조사 지시가) 전적으로 국내 문제라고 했지만, 요새는 국내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다. 사드를 배치하면 발사대 6기가 들어온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국내 지지세력만 보지 말고 국제적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한·미 동맹이 중요한 만큼 한·미 동맹 측면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한·미 간에 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는데.

“문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국익 관점에서 생각하면 우리의 외교 정책은 한·미 동맹을 주축으로 해서 펼쳐나가야 한다. 정권 초반에 한·미 동맹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 해결 방안은.

“사드 문제가 중국에 절차적 설명을 하지 않아서 불거졌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에는 할 이야기는 다했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사드를 철회하기 전까지 좋은 해법은 없다. 10월 중국 전당대회까지는 강경파들이 시진핑(習近平) 정부를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잘 안 될 수 있다. 올해 10월이 되면 미국 외교·안보 라인이 갖춰질 테니 그때 가서 미국과 조율해 중국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5월 26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북한 주민 접촉을 승인했는데 북한은 사흘 후인 29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북 유화책이 효과가 있을까.

“보수 정부 9년 동안 강경 일변도 정책을 폈지만 결과적으로 핵 문제를 막지 못했다. 이제는 대화와 압박 양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강해졌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북 유화책) 시험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국제정치가 압박을 위주로 하는 대북정책을 펴고 있어 환경이 이전보다 훨씬 나빠졌다는 것이다. 환경이 나빠져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환경이 나빠졌기 때문에 주변국인 미·중·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외교적 능력과 설득 능력이 더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의미의 인도적 차원의 접근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제조건이 있는데 대북정책의 콘텐츠를 만들고 국민·전문가들과 컨센서스를 확립해 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콘텐츠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 동의를 얻은 정책을 만들고 이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인데.

“가장 중요한 점은 너무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천천히 해야 한다. 우리가 내용을 만들어 천천히 설득하겠다는 생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엇박자가 난다. 미국은 지금 제재 국면으로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고 있는데, 우리가 북한에 정상회담을 하자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인도적 지원과 남북한 탐색적 대화는 계속하되 제재는 지속한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제재를 풀거나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하면서 국민과 국제사회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9년간 단절된 남북 접촉을 만회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전임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단절되는 등 상황이 악화된 데 대한 부담이 크지만 이를 너무 의식해 만회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무리한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 진전과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할 방안을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관여·포용 단계가 도래하고 한국이 보다 주도적으로 역할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국제사회에 확신을 주고 설득하는 작업의 첫걸음으로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한데, 한·미 간 대북정책에 거리가 있다.

“외교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상대 국가에 대해 신뢰가 없는 것이다.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외교에 나서면,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 오해를 불러와 국면 전환이 어렵게 된다. 북핵 문제에서도 한국의 대화·압박 병행을 미국에서는 친북이라고 생각하고, 자국의 대북 압박 정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측면이 있다. 한·미 간 신뢰관계를 통해 새로운 접근(한국의 대화·압박 병행)이 비핵화로 가는 길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북핵 문제를 풀기 어렵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경우 문제는.

“미국 등 주요국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제재·압박 구도에서 이탈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의사와 무관하게 대북 조치나 협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북한에 끌려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미 관계가 매우 좋아졌다. 그런데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핵무기 개발이 방어용이라는 북한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얘기하면서 한·미 관계가 틀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를 쌓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디에 주안점을 둬야 하나.

“정상회담에서는 보따리를 가지고 가서 미국의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하겠다고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바기닝을 할 수도 있고, 막연하게 신뢰를 쌓을 수도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모리 요시노(森喜朗) 전 일본 총리는 IT(정보기술)를 잇(it)이라고 읽을 정도여서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내에서 걱정이 많았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야구 이야기로 3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후 미·일 동맹은 최고의 동맹이 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하고 골프 27홀을 치고 나서 친해졌고 이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압력도 없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바기닝을 하려 하지 말고 신뢰 쌓기에 집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의 달인이어서 바기닝해서 (문 대통령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각별한 대화 상대,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는 인상을 줄 때 각종 한·미 현안을 우리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지혜롭게 풀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문라이트(달빛)정책으로 불리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햇볕정책에도 핵 문제가 악화됐는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우리가 다할 수 있다. 북한은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다. 국제사회가 도와주든 안 도와주든 민족끼리 대화하면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산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적고, 결국 국제사회와 함께 가야 하는 부분이다. 제재도 국제사회가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며 국제사회보다는 조금 진전된 정책을 취해야 한다. 둘째, 20년 장기간을 머릿속에 넣고 문재인 정부 5년간 할 수 있는 것을 정해야 한다. 이번 정부는 핵 동결을 할 수 있는 정상회담까지 간다든지, 장기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목표를 가져가야 한다. 셋째, 과거 정부처럼 물밑 접촉, 비선 라인에 치우쳐 대북관계를 가져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험이 많아서 비선을 통해 어떻게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비선 라인을 통해 북한에 돈을 주고 뭔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문제가 논란인데.

“사실 해법이 없지만 사드 문제보다는 전향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문제를 지켜주길 바라는데 한국은 재협상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도 재협상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협상에 응할 부분이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 측의 진정한 사과 요구에 맞춰 사죄 편지, 주한 일본대사의 위안부 방문 사과 등이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이 있다. 타이밍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일본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일본에 10억 엔(약 101억4000만 원)을 돌려줄 테니 협상을 파기하고, 재협상하자고 하면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 우선 한국 내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검토하고, 우리가 일본에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해 요구해야 한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문제와 불상 반환 문제, 징용 피해자 대법원 판결 문제 등을 어떻게 정리할지 정부의 방침이 필요하다. 이를 정리한 이후에 일본 측과 위안부 합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외교력이 경제력에 미치지 못한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전략 외교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전략 외교 목소리보다 여론에 따른 포퓰리즘 외교를 펴다 보니 외교가 번번이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해서 체결했는데 나중에 국민이 반대하니까 당시 찬성하던 사람들이 돌아섰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하자고 하니까 우리가 당시 협상을 잘한 것이라는 정반대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을 너무 무시한 정책은 안 되지만,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국민에게 당당해야 국제관계에서 당당할 수 있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돼야지 지지율에 연연하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김석·박정경 기자 su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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